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치른 모은행에서는 이런 우스개가 나돈다고 한다.
50대 행원들이 후배들을 만나면 돈을 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거의 다 물러나고 이제 몇명 남지 않아 '희귀종'이 된 자신들을 구경하는 값을 내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오간다는 얘기다.
40대 행장이 등장한 시대에 50대 행원의 설자리가 없어진다해서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 됐다. 따지고 보면 은행만 그런 것도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 정보화와 세계화, 글로벌스탠다드에 의한 구조조정과 벤처바람 등이 어우러지면서 사회 모든 부문에서 세대교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고용조정의 다른 표현이나 다름없는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또는 코스트절감을 위해 고용조정을 할 때 나이는 가장 말썽적은 잣대가 된다.
개인별 직무능력이나 생산성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우리 실정에서 나이는 비록 합리적이지는 않더라도 강제퇴직의 설득력 있는 기준으로 통용된다.
미국과 같은 기업에서는 고용조정을 할 때 인적자본의 축적이 많고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고참들보다 입사기간이 짧은 신입사원이 해고의 1순위가 되지만 우리는 반대다.
기업과 경제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나이라는 간편한 잣대로라도 고용조정을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급속도로 진행되고 고령화사회를 보고 있자면 나이라는 획일적인 잣대에 의한 '젊은 노인들'의 양산은 새로운 문제를 잉태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전체인구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달해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섰다. 그리고 불과 17년 뒤인 오는 2019년이면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14.4%로 높아져 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ㆍ프랑스를 포함한 선진국들이 적어도 50년 내지 100년에 걸쳐 도달한 고령사회를 우리는 불과 19년 만에 맞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을 했듯이 인구의 노령화도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곰곰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고령층의 증가는 경제적으로나 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부담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제적으로 노인층은 생산에 대한 기여도는 제로이거나 매우 낮은 반면에 소胄?많은 계층이다. 미국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만 해도 노인은 젊은층의 4배가 넘는다고 한다.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으면서 소비만 하는 계층이 두터운 고령사회가 무리 없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젊을 때 자신의 노후소비를 위해 충분히 저축을 해놓던지,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가 고령층의 소비를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첫번째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야 노후를 보내게 되는 것이 노령사회에 들어서는 선진국들의 경험이다.
그러나 전체인구에서 고령인구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일하는 노동력의 실질적인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장도 여의치 않게 되어 고령인구를 부양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적인 가족복지관행도 급속히 무너지고 있어 더이상 믿을 만한 방법이 못된다.
고령사회의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적어도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고령층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가능한 오래도록 일을 함으로써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 고령사회에 따른 사회적 부담과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연령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조기퇴직이 성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고령사회에 준비는 커녕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엄격한 능력평가와 이를 기초로 한 인력관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연령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일할 의욕과 능력있는 장년들을 일자리에서 내모는 풍토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젊은 노인'들의 대령실업사태가 몰고 올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년제폐지를 포함해 고령층까지는 몰라도 중고령자(55-65세)들에게 맞는 직종개발과 일자리창출과 같은 정책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모든 사람은 늙는다. 그러나 노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지 않는 대량 소비자가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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