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시장이 금융위기를 딛고 막 되살아나는 시점에 터진 도요타의 대량 리콜사태는 화석처럼 굳어 있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시장지배구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이참에 아예 '도요타의 허리를 부러뜨리겠다'는 심사를 나타냈다. 미국의 빅3 자동차 메이커 가운데 GM과 포드가 "도요타 고객이 자사 자동차를 구매하면 1,000달러 리베이트와 무이자 할부혜택을 주겠다"며 노골적인 마케팅을 전개할 정도다. 독일의 폭스바겐도 오는 2018년 판매목표를 지난해보다 60% 늘려 잡으면서 사실상 '도요타를 제치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 자동차시장에서는 이미 판도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1월 북미 자동차시장 점유율에서는 GM(20.9%)과 포드(16%)가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한때 북미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던 도요타는 이제 만년 3위인 포드에도 밀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도요타의 1월 시장 점유율은 14.2%에 그쳤다. 자동차 판매대수로는 9만8,796대.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월간 판매량이 10만대 아래로 추락했다. 1년 전에 비해서는 16%, 전월 대비로는 무려 46% 급감한 수치다. 도요타가 휘청거리자 세계 3위 업체인 폭스바겐이 야심찬 도전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이날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를 중기적으로 800만대, 2018년까지 1,000만대로 늘린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지난해 전세계 판매량(630만대)보다 60% 이상 증가한 수치로 지난해 780만대를 판매한 도요타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 다만 폭스바겐은 미국 메이커들의 리베이트 제공이 "약탈적 행위"라며 사용하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요타의 추락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게 미국 자동차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IHS글로벌 인사이트의 레베카 린드랜드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도요타는 리콜파문 이전에도 현대차와 포드ㆍ혼다에 고객을 빼앗기고 있었다"면서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대 1,000만대로 예상되는 이번 리콜로 '도요타=품질'이라는 등식이 깨져 수십년간 쌓아온 명성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실시하는 온라인 투표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45.5%가 "이번 리콜이 도요타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결국 명성을 회복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20.7%에 그쳤다. 미국 최대 자동차 온라인 정보망인 켈리블루북은 "도요타를 사려던 수요자들의 20% 이상이 리콜파문 이후 외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도요타의 간판 친환경 자동차인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결함 가능성까지 제기돼 도요타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날 신형 프리우스의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빈발해 도요타가 자체 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도요타의 리콜사태 이후 GM과 포드ㆍ폭스바겐 등을 주축으로 한 기존 빅메이커들의 협공,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착실하게 다져온 한국 현대ㆍ기아차의 추격이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글로벌 자동차시장은 앞으로 등장할 작은 변수 하나에도 모습을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