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7월 1일] <1737> 엇박자 금리정책


1927년 7월1일, 롱아일랜드. 미국 재무장관 오그던 밀스의 별장. 미국과 영국ㆍ독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였다. 프랑스에서도 중앙은행 총재 대리인이 나왔다. 여드레 동안 이어진 회의의 결과는 미국의 금리인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산하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가운데 하나인 뉴욕연방은행 총재이면서도 정ㆍ관계와 금융계에 대한 영향력으로 중앙은행 총재처럼 군림하던 벤저민 스트롱은 연 4%인 재할인금리를 3.5%로 낮췄다.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아연실색했다. 1920년대 이래 상승가도를 달리며 과열 경고등이 켜진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할 판에 거꾸로 내리다니! 교과서와는 정반대의 금리정책이었다. 왜 그랬을까. 좋게 말해 국제공조 때문이다. 1925년 금본위제도로 복귀하며 1파운드의 가치를 4.86달러로 고평가하는 통에 수출경쟁력 저하와 자금유출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국의 몬태규 노먼 영란은행 총재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종용했다. 잘못된 정책의 대가는 컸다. 1928년 하반기에 주요 종목의 가격이 50%나 뛰었다. 스트롱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모건 금융재벌의 대표조차 이렇게 말했다. '스트롱과 노먼이 모든 걸 망쳤다. 회오리에 대비해야 할 때다. 세계경제는 극심한 후유증을 겪을 것이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스트롱이 병으로 사망한 지 1년 만인 1929년 10월 주가가 폭락하고 세계경제는 대공황으로 빠져들었다. 이후의 경제정책은 먹혀들지 않았다. 대공황 요인 가운데서도 그릇된 금리정책은 1순위로 꼽힌다. 정책실기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경제성적표 자랑을 늘어놓기보다는 속도조절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할 타이밍이다. 출구전략을 만지작거리는 금융당국이 미국의 사례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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