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1월 16일] 명분 잃은 보금자리주택

집값 하락이 서민을 위한다는 보금자리주택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무주택 서민을 위해 그린벨트까지 풀어 공급하는 주택인 만큼 주변시세보다 크게 저렴해야 한다고 믿었다. 정부가 내세운 목표도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비상경제대책을 주재한 자리에서 "헬기를 타고 보면 서울 근교 그린벨트에는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 신도시를 먼 곳에 만들어 국토를 황폐화시킬 필요 없이 이런 곳을 개발하면 인프라를 새로 건설하지 않고도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변시세 90%대까지 치솟아 이후 집 없는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주택정책인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이 구체화됐다. 속속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 발표되고 보금자리주택 건설일정이 확정됐다. 싼 값에 무주택 서민에게 집을 공급한다는 것, 이는 그린벨트 해제의 명분이었다. 시작은 목표에 부합됐다. 강남에서 최대시세의 절반 가격에 공급되면서 무주택자들이 열광했다. 저렴한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뿐만 아니라 꿈도 꾸지 못했던 강남 입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먼 훗날 시세 차익까지 내 인생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달랑 강북에 집 한 채 가진 사람은 무주택자의 강남 입성 기회에 대해 부러움과 함께 역차별이라는 불만도 많았지만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무주택자를 위한 서민정책이라는 대의명분에 밀렸기 때문이다. '값싼 서민주택' 원칙 지켜져야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과 서초지구, 고양 원흥, 하남 미사지구 등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4곳에 대한 사전예약이 실시된 후 1년 만에 이 같은 명분이 뒤흔들리고 있다. 당시 보금자리주택 분양가는 주변시세의 50~70% 수준이었다. 위례 신도시의 보금자리주택도 62~65%, 2차 지구 보금자리주택은 56~80% 수준으로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급가격으로는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었다. 그러던 분양가격이 오는 18일 사전예약이 이뤄지는 3차 보금자리주택에서는 75~90% 수준으로 90%대까지 올라갔다. 현지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정도면 보금자리주택은 경쟁력을 잃는다. 7년에서 10년까지 전매가 금지되는데다 5년 의무거주기간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시세와 별반 차이도 없고 집을 팔 수도 없으니 무주택 서민 대책이라는 말이 오히려 무색하다. 물론 주변시세와의 차이가 좁혀지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안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주변시세가 갈수록 낮아지니 이보다 더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가는 원가가 오르면 올랐지 낮아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집값은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땅값 하락세는 미미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규모를 보면 분양가를 낮출 수 없는 처지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를 다 인정하더라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파트를 짓겠다고 그린벨트를 헐어 낸 대의명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그린벨트는 공공목적이라는 명분 아래 끊임없이 훼손돼왔다. 비닐하우스로 가득 찬 그린벨트를 해제해 보금자리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할 당시에도 이런 비판은 적지 않았다. 이를 잠재운 명분이 바로 무주택 서민을 위한 값싼 주택이다. 그린벨트를 헐어 보금자리주택을 계속 지으려면 재정지원을 해서라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1년여 만에 그렇게 쉽게 흔들릴 명분이었다면 더 이상 추진할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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