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카드규제 더 완화해야

지난 9월27일 정부는 급격한 소비위축을 막기 위해 현금대출 비중을 줄이는 시한을 연장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현금대출비율 50% 준수 시한을 내년 말에서 이후 3년까지 연장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카드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이나 시민단체 등 일부에서는 카드를 통한 소비로 경기를 부추기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외환위기 이후 카드활성화 정책이 신용불량자 양산이나 카드사 부실의 원인이 됐으므로 또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겠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현금대출을 늘릴 수 있는 카드사는 많지 않을 것이므로 기우(杞憂)다. 정작 이번 조치에 대한 카드사의 시선은 기존의 카드규제에 대해 당국의 내심(內心)에 모아지고 있다.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타의 규제, 특히 적기시정조치와 충당금 설정기준 등이 완화될 수 있는 예고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 입장에서는 현금대출 비중의 준수시한이 연장됐으므로 당분간 영업에 다소 숨통이 트였다고 할 수 있으나 필요한 시기에는 언제든지 감독의 날(刃)이 될 수 있는 보도(寶刀)이므로 이번의 완화시책이 어쩌면 `소문난 잔치`의 허상일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은 듯하다. 현금비율 규제는 장기적으로 철폐돼야 한다는 그간의 주장에서 비롯된 비판이다. 설렁탕 판매비중을 50% 이내로 강제할 식당규약을 제정할 수 없는 이치로 금융시장에서 상품의 선택비율을 제도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금융의 경계가 소멸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부대업무를 별도로 구분하는 일은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적기시정조치의 연체율 문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드사 대부분이 현시점을 거슬러 지난 1년간은 적자상태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체율이 10%를 넘게 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적기시정조치의 대상이 되는데 이를 모면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조기에 대손상각을 하거나 채권을 헐값으로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수지는 더욱 나빠지게 되고 경영에 있어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충당금 기준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자산 건전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세 차례에 걸쳐 설정기준이 강화됐다. 그 기준은 경기 상향기에 정해진 것이므로 침체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카드사의 지난 분기 실적은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경영회복의 핵심인 경기도 여전히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4ㆍ4분기에는 월별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당초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년 상반기에도 회복의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처지다. 정책의 효율성은 시차(time lag)의 문제다. 시행시기와 강도가 성패를 가른다는 뜻이다. 신용카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면 미리 강구돼야 한다. 신용카드시장이 단시간에 급성장하면서 카드와 관련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상거래의 투명성과 조세 정의를 구현하는 등 신용사회로 가는 순기능의 역할이 훨씬 크다. 따라서 부작용에 초점을 둔 규제보다는 건전한 성장으로 육성하는 비전이 필요한 때다. 이번 규제완화 조치는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포석이었으나 카드사의 수익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금대출 규제를 완화한 이번 조치가 시장여건이나 경기변동에 정책이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신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보우(여신금융협회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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