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 2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서민들은 여전히 높은 물가에 시달리고 한결같이 ‘더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강종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2일 ‘경기 하강기에 체감물가 높아지는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 찾아왔던 불경기의 소비자물가를 분석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우선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품목이 달라졌다는 점이 원인이다. 외환위기 이전(1985~1996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5.6%였는데 외식 등 개인 서비스가 8.9% 올라 상승을 주도했다. 농축수산물 등 필수소비재는 5.2% 상승했고 내구재 등 선택소비재는 2.1% 상승에 그쳤다.
외환위기 이후(2000년~현재)에는 교육비(5.2%)와 필수소비재(3.5%)의 가격이 물가상승률(3.2%)보다 많이 올랐다. 외환위기 전 물가상승을 주도했던 개인서비스 가운데 외식비와 기타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필수소비재는 경기가 상승할 때는 가격이 1.9% 오른 반면 경기가 하강할 때는 오히려 5.5% 상승했다고 강 연구원은 분석했다.
서민생활을 좌우하는 것은 필수소비재 가격이다. 지갑이 얇아지면 금액이 큰 내구재는 구매 시점을 미루고 사치재는 아예 구매를 포기하면 되지만 필수소비재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구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소득분위별 소비지출 비중을 보면 고소득층은 필수소비재 비중이 24%인 데 비해 저소득층은 35%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하강에 필수소비재 가격 상승이 겹쳐 저소득층의 생활이 더 힘겨워지는 것이다.
불황과 금융불안이 함께 나타나면서 환율이 폭등하는 현상도 해외의존도가 높은 농축수산물이나 석유제품의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농축수산물과 석유류는 환율탄성치(환율에 반응하는 정도)가 높아 환율이 조금만 올라도 가격이 민감하게 움직였다.
강 연구원은 “불황기에는 소득이 줄어 체감물가는 훨씬 비싸진다”며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소비자물가는 안정되는 모습이지만 저소득층이 느끼는 물가 부담이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