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0월 22일] 막걸리 세계화의 조건

"막걸리로 계속 하겠습니다." 지난 9일 한일 정상회담 직후 가진 오찬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내외는 식사순서에 따라 막걸리에 이어 제공된 와인을 과감히(?) 물리쳤다. 외국 정상이 와인 대신 한국적인 맛의 막걸리를 선택한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 '서민의 술' 막걸리가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술'로 발돋움하고 있다. '싼 값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술'로만 인식되던 막걸리가 최근 몸에도 좋은 '발효식품'으로 재조명되면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과 함께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고 얼마 전 일본행 국제선 비행기에는 막걸리가 기내식으로 첫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주한 외교단 초청 다과회에서 "막걸리가 건강에 좋고 여성들에게는 미용과 피부에 좋다"며 외국인을 상대로 한 막걸리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해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특히 막걸리의 주원료인 쌀의 국산화는 시급한 과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술을 만드는 데 사용된 3만6,000톤의 쌀 가운데 국산(7,000톤)은 20%도 채 안 됐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분석한 자료에서도 국내 막걸리 출고량 상위 20개 업체 중 국산 쌀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최근 쌀값 폭락으로 논을 갈아엎는 농민들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뉴스가 마치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물론 국내산이 수입산보다 3배나 비싼 현실에서 영세한 규모가 대다수인 국내 막걸리업체들에 당장 100% 국내산 쌀 사용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프랑스의 '와인'과 일본의 '사케' 모두 자국산 포도와 쌀을 주 원료로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수입산 쌀로 만든 막걸리'가 전세계인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국산 쌀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제조업체 역시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국산 쌀로 만든 고급 막걸리의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물론 원료의 종류와 사용량ㆍ제조방법 등 막걸리의 규격 기준 마련과 함께 제조시설의 현대화, 다양한 유통망의 확보 등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정한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국내산 쌀로 만든 막걸리가 보편화돼야 한다. 이것이 전제될 때 비로소 '와인=프랑스' '사케=일본'과 같은 '막걸리=한국'의 공식이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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