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명문 시카고 대학의 한 경제학 교수가 길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100 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효율적 시장 가설`로 불리는 경제학 이론을 굳게 믿던 이 교수는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남들이 먼저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100 달러 지폐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가치 있는 정보(100 달러짜리 지폐가 길에 떨어져 있음)는 시장에 알려지자마자 모든 시장 참여자(모든 보행인)가 즉각적으로 반응, 이익 실현 기회(돈을 주워서 100 달러를 버는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 이론의 신봉자인 교수는 경제 이론을 의심하기 보다는 엉뚱하게도 100 달러 지폐를 발견한 자신의 눈을 의심한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일화는 물론 사실이 아니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맹신으로 현실 감각을 잃어 버린 경제학을 풍자하기 위한 만들어진 우스개 소리다. 그러나 이 우스개 소리는 현실로부터 멀어져 온 경제학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경제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게 된 건 이처럼 현실과의 괴리가 확대됐기 때문. 일화에서 언급된 `효율적 시장 가설`의 경우, 학계는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정설로 받아들이는 반면, 뉴욕의 월가 등 업계는 진지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에 이익 실현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가설이 맞다면 월가 투자은행의 존재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 이론이 이처럼 현실에서 멀어진 건 일화에 등장하는 경제학자의 경우처럼 인간의 합리성을 맹신한 데서 비롯됐다.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수상자회사 몰락등 노벨경제학상 폐지론도
지난 9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머튼 교수와 마이런 숄즈 교수는 노벨상 수상후 일년도 지나기 전에 자신들의 학문적 명성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이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가 98년 여름 몰락하며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던졌기 때문이다.
회사의 몰락과 두 노벨상 수상자의 학문적 업적과는 무관하다는 회사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현실을 등한시하는 `아카데미즘`에 빠진 경제학의 한계를 부각시켰다. 머튼 교수와 숄즈 교수에 노벨상을 안겨준 `옵션가격이론`은 경제학 중에서 현실 적용력이 가장 높은 분야인 것으로 지적돼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당시 헤지펀드의 몰락에 실망한 투자자들과 학계 일부에서 노벨경제학상 폐지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