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인 25일 KBS가 마련한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 전반기 국정 성과와 후반기 과제에 대해 입장을 소상히 밝혔다.
지난 2003년 11월 이후 1년10개월 만에 방송을 통한 대국민 직접 대화에 나선 노 대통령의 이번 토론회는 KBS 스튜디오에서 김광두 서강대경제학과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교수등 전문가 4명과 주부등 일반국민 9명으로 구성된 패널의 질문에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으로 100분간 진행됐다.
토론에서는 경제문제에 1시간 가량 할애될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경제에 집중됐다. 대통령은 새로운 구상이나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통치철학과 기존 구상을 국민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설명,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대연정(聯政)구상과 관련해 “엊그제 발표된 지지도가 29%인데 이정도의 지지도를 갖고 국정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뜻에 맞는 것인가”라며 근본적 의문을 던지면서 “29%짜리 대통령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걱정해야 되는 가에 대해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고, 문제의 본질에 정면으로 한 번 부닥쳐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정책 저항, 옳지 못하다”=단연 부동산 문제가 화두로 올랐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완해줘야 하며 10ㆍ29대책에서 완전하게 그리지 못한 ‘호랑이’를 8ㆍ31대책에서 그리겠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금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지역개발이 일부 투기꾼들을 움직이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내성과 저항을 근본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정부내 조율과 당정협의 과정에서 누더기가 된 10ㆍ29 대책을 예로 들며 “호랑이를 그리려고 했는데 표범보다 조금 작은 호랑이밖에 못 그렸다”면서 “부동산 정책이 역대 정책에서 실패한 이유는 이 같은 저항에 있고, 이 저항은 옳지 못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이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중산층이 더 심들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유 재산의 원리, 시장원리 등을 갖고 헷갈리게 하지 않는 게 좋다”면서 “지금 (부동산 정책에 대해) 가장 문제제기를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점, 우리 국민들이 똑똑히 봐줘야 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정말 앞으로 언론과 어떻게 다퉈 나갈까 참 걱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국민 부담률 좀 올려가야 한다”=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와 관련해 조세와 연금 등의 국민부담률을 선진국 처럼 좀 더 올려야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성공한 나라들은 국민부담율이 50%를 넘지만 우리나라는 25%에 이른다”며 “국민부담율 중에서도 조세부담율이 높을수록 건강하고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우리가 49%, 50% 올릴 수는 없지만 단 1%라도 올려가는 노력”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가는 사회, 지속성장 사회로 가는 것”이라며 “중산층이 좀 짜증나도 연금 부지런히 내고 세금 도 좀더 내시라”고 당부를 곁들였다.
한 중소기업인이 대기업이 투자해야 중소기업도 살고 고용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노 대통령은 “기업들이 ‘규제가 많다, 출자총액제한 그거 풀어달라’며 여러 요구를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규제가 아니다”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자신이 있으면 투자한다며 답해 재벌규제 완화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권력 통째로 내놓겠다” =정치분야에서는 단연 대연정(聯政)구상에 화제에 올랐다. 노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연정 그 정도 갖고는 얽혀서 골치 아프니까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 보겠다”며 “나한테 더 큰 요구가 있으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연정 제안은 음모가 없으며 연정을 받기 싫으면 분열구도 극복을 위한 정치협상이라도 하고, 연정이 위헌이면 선거제도에 대한 협상을 하자는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요구”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독일의 슈뢰더 총리와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국민신판을 받겠다는 예들 들면서 “우리 정치제도가 내각제가 아니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서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며 “29% 지지도를 갖고 국정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과연 책임정치의 뜻에 맞고, 국정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우리 정부는 약체정부이며, 이 약체정부가 구조적으로 노태우 대통령 정부부터 지금까지의 정부가 계속해서 약체정부”라며 “여소야대가 구조화돼 있고 지역구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약체정부가 구조화된 구조를 고치지 않고는 중요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노사정 대타협 못한 것 가장 뼈아파”=대통령은 가장 미흡했던 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역구도 해소와 노사정 대타협에 실패한 것을 꼽았다. 그는 “내 고향에서 핍박 받으면서도 서로 적대하는 지역에 정성을 다 바쳤다. 그렇게 해 왔는데 지금 별 성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되면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노동자들 설득 못했고, 사용자도 설득 못했고 그것이 가장 뼈 아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는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국가권력의 도덕성은 무한대라야 한다. 거기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며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 과거사는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청과 관련해서 노 대통령은 “도청사건이 국가의 범죄이기 때문에 소위 97년의 대선자금보다는 훨씬 더 큰 문제”라고 말해 대선자금 수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교안보분야 자신감=노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질문에 와서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참여정부가 내세울 만한 정책분야가 한미동맹 부분하고 북한 핵문제”라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노 대통령은 “우리한테 불리하고 억울한 것도 말 못하고 수용해야 되는 수준까지는 가지 말고, 우리 국민들이 너무 자존심 상하지 않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이고 균형있는 한미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핵문제 해결을 낙관했다. 그는 “한국이 ‘그것은 안 됩니다’ 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무력행사 얘기가 나오다가 평화적 해결로, 대화에 의한 해결로 또 바뀌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북핵문제는)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아무도 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며 “그 문제는 반드시 풀린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