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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5시에 기상해 하루 종일 무전기로 전달되는 아내의 명령과 잔소리 속에서 소처럼 일만 하는 알렉산더. 그러다 아내와 장모가 우연한 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세상에 다시 없는 게으름뱅이가 된다. 애완견을 훈련시켜 먹을거리를 대신 사오게 하면서까지 집 밖에는 일절 나가지 않고 침대에서만 지낸다. 급기야 알렉산더의 게으름이 전염되는 것을 우려한 이웃 아낙들이 마을 회의에서 그의 게으름을 고치기로 결정한다.
1967년에 나온 프랑스 영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의 줄거리다. 여전히 현역인 국민배우 필리프 누아레의 젊은 시절 연기도 볼만 할뿐더러 우리나라에 소개된 후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이 영화를 계기로 프랑스 코미디 영화 붐이 일어나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국내 TV에서 재방영될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 남편들의 꿈꾸는 생활'을 재연했다며 공감하는 감상평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가 나온 배경이 프랑스이고 50년 가까이 되는 시차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최근 이 영화처럼 자유로운 독신을 꿈꾸는 황혼의 남편들이 늘고 있다. 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65세 이상 남편의 이혼 상담 건수도 10년 사이 8.3배가 늘어 지난해에는 373건이나 됐다고 한다. 정년이혼·황혼이혼이란 말이 너무 흔한 일이 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추세를 남편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퇴 후 경제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아내는 물론 자녀들로부터 홀대 받을 바에야 아예 혼자 사는 게 낫지 않으냐는 인식에서란다. 요즘에는 마트에 가도 1인용 음식물이나 생활용품이 널려 있다. 혼자 사는 데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생활 환경도 한몫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식의 극단적인 선택 방식도 자칫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은퇴 후 부부가 함께하는 지혜까지 슬기롭게 준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온종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