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르누아르서 천경자까지… 화폭에 담은 '여인의 향기'

서울미술관 '미인:아름다운 사람'展

천경자, 청혼, 1989, 종이에 채색, 40×31cm
천경자의 1989년작 '청혼' /사진제공=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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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기대 누운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소녀'
이숙자, 이브의 보리밭-파란
이숙자의 2009년작 '이브의 보리밭-파란 달개비'


사랑에 빠진 여인의 눈동자는 반짝이다 못해 금빛으로 영롱했다. 연인을 앞에 둔 그녀는 자신의 정열만큼이나 붉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한 아름 장미꽃도 들었다. 천경자(1924~2015)의 1989년작 '청혼'이다. 청혼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자의식 강한 이 여성은 먼저 청혼하러 나서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가가 바라던 여인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유부남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했던 천 화백의 실제 생애를 떠올려 본다면, 화려함 뒤로 숨겨둔 여인의 금빛 눈동자에서 '청혼'할 수 없는 비애와 고독,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작가는 고운 색들로 그림을 완성하고는 마치 화장을 하듯 들뜬 볼에, 붉은 입술에, 구불구불 멋부린 머리칼 끝에 고운 금가루(석채)를 칠했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실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붓질이다. 이 '청혼'의 소장가인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은 "뉴욕에 있는 천경자 화백의 큰 딸 집에 걸려있던 작품을 인연이 닿아 구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기획한 특별전 '미인:아름다운 사람'에서 이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여인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작가 26명의 40여 작품으로 선보였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니 '미인'이라는 주제 아래 놓인 작품 또한 천차만별인데 용케도 하나같이 곱기도 곱다.

천경자 화백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작가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1977년작 '테레사 수녀', 1974년작 '고(孤)' 앞에는 관람객이 끊이질 않는다. 천 화백 작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초원Ⅱ'도 볼 수 있다. 작가가 타히티에 다녀와 그린 대표적 '천경자 풍물화'다. 코끼리의 등 위에 전라의 여인이 누워있는 이 작품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됐다. 가격 상승분을 고려한 현재 보험추정가는 22억원이다.

운보 김기창의 미인도는 지극히 동양적인 여인들을 세워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운보의 초기작이라 그의 스승이자 한국화단의 거목인 이당 김은호의 영향이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반면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의 작품에 나타나는 연인의 모습들은 당돌하고, 애틋하고, 때로 낭만적이다. 벗은 여인상만 모은 '누드의 방'은 특히 흥미롭다. 권옥연은 소녀를 즐겨 그렸는데 이번 전시에는 보기드문 전라의 소녀상이 걸렸다. 요절화가 이인성의 '나부'가 묘한 매력을 풍기고, 박영선의 누드화는 아뜰리에에 앉은 여인의 모습에 작가의 자의식이 투영돼 있다.

그림 외에도 미술관 곳곳에서는 '미인'의 의미를 되새긴다. 1918년 발간된 '조선미인보감'은 일종의 기생명부인데 열세살 안팎의 앳된 여인들에서 또래인 요즘 걸그룹이 겹쳐 보인다. 전시장 끝에는 커다란 거울 하나가 걸려있다. 마주한 자신을 향해 거울이 답한다.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쓸쓸한 가을에 위로를 주는 전시다. 내년 3월20일까지.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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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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