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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삼성그룹 임원인사에서는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 특유의 인사 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난 1일 사장단 인사에서는 물갈이 인사를 최소화하며 '안정'에 방점을 찍었지만 부사장 이하 임원인사에서는 신상필벌의 원칙이 냉정하게 적용됐다. 이날 삼성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부친과 다르다고 하지만 인사에서만큼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성과주의 원칙이 분명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사업부별로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명암 엇갈린 삼성전자=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관련 사업부와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14명 중 반도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품(DS) 부문 임원은 5명에 달해 그 비중이 35%에 달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맡고 있는 무선사업부에서는 권계현 전무만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권 전무는 외교부 출신으로 정통 '삼성맨'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인사에서 사실상 무선사업부가 전멸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DS 부문의 승진 잔치는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을 낸 공로로 현지 임원(VP급) 3명이 본사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DS 부문은 현지인 본사 임원 승진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법인에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객과 파트너십을 강화한 공로로 현지 본사 임원 승진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TV와 냉장고 등을 담당하는 소비자가전(CE) 부문에서는 총 3명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성장 사업 힘 실어=삼성그룹은 올해 임원인사에서 승진자를 294명으로 제한했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을 중용하는 '발탁 인사'의 비중은 예년과 비슷한 15%대로 유지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올해 승진 연한을 채우기 전에 위 직급으로 승진한 발탁 임원은 총 44명에 이른다.
생산자동화 전문가인 김학래 삼성전자 상무가 스마트폰 글라스, 메탈 케이스 공정을 개선한 공을 인정받아 2년 만에 승진했고 반도체 공정개발 전문가인 심상필 삼성전자 상무도 시스템LSI 사업 일류화를 주도한 공로로 전무 승진했다.
비(非)제조 부문 계열사에서는 김정욱 삼성물산 부장이 빌딩 해외영업 분야에서 수주 경쟁력을 인정받아 상무 승진했으며 정연재 삼성생명 부장도 동탄·오산·부평 등 지역사업단에서 우수한 성과를 인정받아 2년 만에 승진했다.
그룹의 신성장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SDI(2차전지)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도 승진 인사가 이어졌다. 김유미 삼성SDI 전무가 여성 개발자 중 처음으로 부사장 자리에 올랐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도 각각 1명·2명의 임원승진자를 냈다. 바이오 계열사의 경우 회사 임직원 규모가 작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폭의 포상인사가 이뤄졌다는 평가다.
◇조직개편 후폭풍 불가피=삼성이 올해 인사에서 임원 승진자 수를 축소하면서 대대적인 조직재편이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전자에서만 전체 임원 중 20%가량이 이미 옷을 벗은데다 승진을 최소화하면서 일부 사업부나 팀이 통폐합되는 식의 조직 슬림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미래전략실에서는 이미 군살빼기 작업이 진행됐다. 오너가(家) 직속 조직인 비서팀을 해체해 인사팀으로 분산 발령했다. 계열사 경영을 관장하던 전략1팀과 전략2팀도 통합해 운영하기로 했다. 화학 계열사가 모두 매각돼 업무영역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이르면 다음주 조직재편 및 임원 위촉인사를 실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