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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수호자서…
독재정권 타도 시민들 핵심 수단… 총기소유는 '개인 저항권' 상징
민주주의 파괴자로…
美 10년간 총기 사망자 31만6,500명… 규제없는 소유 자유, 살인도구로 전락
오바마·힐러리 등 제한법 추진하지만 막강한 로비 전미총기協에 관철 어려워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의 위대한 시대는 머스킷총과 소총의 시대였다. (…) 머스킷총 덕분에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성공이 가능했다."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인 조지 오웰이 지난 1945년 영국 일간 트리뷴에 게재한 '당신과 원자탄'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나오는 대목이다. 오웰에 따르면 과거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집어든 총은 민주사회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총기소유가 전제적 정부에 맞서는 개인 저항권을 상징한다는 이러한 인식은 일찌감치 미국의 수정헌법 2조로 법제화됐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오늘날까지 미국 시민들의 자유로운 총기소유를 허용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총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다. 최소한의 규제도 없는 총기소유의 자유는 총을 살인 도구이자 민주주의의 파괴자로 변모시켰다. 스위스 소재 국제무기조사기관인 스몰암스서베이에 따르면 미국 시민들이 보유한 총기는 2억7,000만정으로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의 전체 국민 수(2억4,900만여명)를 넘어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3년 한 해에만도 3만2,383명에 달했다. 1일 미 오리건주 로즈버그의 엄프콰커뮤니티칼리지에서 무고한 사람 10명을 죽인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크리스 하퍼 머서 역시 아무 제재 없이 합법적으로 총을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방송은 2004년부터 10년간 테러로 숨진 희생자가 313명이었던 반면 총기사고로 발생한 사망자는 31만6,545명에 달했다며 테러가 아닌 무제한적 총기소유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미국 정치권이 총기소유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 보수 정치권의 탄탄한 돈줄 역할을 하는 총기산업의 힘 때문이다. 정치자금 추적 사이트인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미국 내 가장 막강한 로비단체로 알려진 전미총기협회(NRA)가 지난해 사용한 로비 자금은 약 2,800만달러(327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90%에 육박하는 거액의 자금을 후원받는 공화당 정치인들이 총기소유를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고 강조하며 총기소유 규제 움직임을 번번이 무산시키고 있다. 게다가 미 전역에 500만명의 회원을 거느리는 NRA가 선거 때마다 총기규제 찬성 의원들을 상대로 벌이는 낙선운동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도 총기 문제에 관해서는 몸을 사리는 실정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 이후 강력히 추진한 총기규제 강화 법안도 의회를 뒤덮은 NRA의 입김 앞에 무산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미 정치권에서는 다시 한번 총기규제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오리건주 총기난사 사건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규제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총기규제 논란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재임기간에 총 15번이나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연설을 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총기규제 입법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정치적 결정' 때문이었다"라며 어느 때보다 결연하게 총기규제 입법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비정상적 상황을 바꾸기 위해 당신이 표를 던지는 후보가 총기규제 문제에서 올바른 방향에 서도록 해야 한다"며 내년 대통령 선거와 상하원 선거에서 총기규제 찬성 후보를 지지할 것을 유권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촉구했다. 여기에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강력한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내년 대선에서 총기규제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힐러리 전 장관은 의회의 협력을 구할 수 없다면 당선 이후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총기규제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공화당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공화당의 대선 경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ABC방송에 출연해 "나는 수정헌법 2조의 적극적인 지지자"라며 "총기규제법은 오리건주 사건과 아무 상관도 없다. 총격사건은 총기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의 문제"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