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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원내지도부가 심야협상에서 마련한 합의안이 야당 의원들에게 반나절도 안 돼 거부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1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2시께까지 협상해 국제의료법·관광진흥법, 모자보건법·대리점법·전공의법 등 서로가 추진하는 5개 법안을 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연계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2일 아침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부터 반발이 터져 나왔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관광진흥법 합의와 관련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우리당 의원들이 강력히 반대하는 법"이라며 반발했다. 유 최고위원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의료민영화의 사전조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최고위원 회의장을 직접 찾아가 "국제의료법과 모자보건법·전공의법의 주고 받기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새정연 출신인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5개 법안 처리는 명백한 국회법 위반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회법에는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면 법사위로 넘어가 5일간의 숙려기간을 두도록 규정돼 있는데 법사위에 오지도 않는 법안을 당일 처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는 "이런 위법행위에 가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전에 법사위원장 등 이해관계자에게 상의하는 게 마땅하지만 막판에 몰린 여야 협상대표들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 위원장의 회견 이후 각 상임위는 야당의 불참으로 모조리 파행했다. 법안을 통과시킬 마지막 방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지만 정의화 의장은 명분 없는 총대를 멜 생각이 없었다.
원내지도부의 협상 내용이 같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먼저 거부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야가 법안을 '주고받기'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법률은 하나하나가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다, 새정연은 지역 예산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다 결국 법안을 거래 대상으로 삼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한 사립대 교수는 "일괄처리라는 미명 아래 법안을 게임 테이블의 카드처럼 거래하는 후진적 관행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는 진통 끝에 이날 저녁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본회의에서는 내년도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 15개 법률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맹준호·박형윤기자 nex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