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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히 아끼고 아껴 모은 재산이지만 저희가 다 쓰고 갈 수는 없지요.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할 과학인재 양성에 써 주세요."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승웅(74)·조정자(72)씨 부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75억원 상당의 부동산 3건을 유증(遺贈) 형식으로 기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달 서울시 성북구 상가와 경기도 의정부시 상가 등 3건의 부동산을 KAIST에 내놓았다.
KAIST에 따르면 이씨 부부는 지난 2003년 부부의 인연을 맺을 당시부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부부의 작은 참여로 국가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KAIST를 알게 됐다. KAIST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부였지만 올봄 기부를 결심하고 부부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기부방법으로 유증을 선택했다.
이씨 부부는 지금의 재산을 모으기까지 아끼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며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상경한 후 지금까지 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었고 마침내 부동산으로 큰 부를 일구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조씨는 "제가 외딸이라 선친 재산을 가지고 있다가 땅을 사고 집을 짓다가 보니 부동산 가격이 올라 재산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느 겨울날 자전거를 타고 눈길을 뚫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순댓국집이 있었는데 따뜻한 순댓국 한 그릇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하지만 그 돈이면 온 가족이 배불리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을 텐데…"라며 지나쳐 온 때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섭게 아끼며 일군 값진 재산이었다. 부부는 소중한 재산을 KAIST에 내놓으면서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조씨는 "결혼 당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남편과 약속했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제 인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들은 좋은 자식을 배로 낳고 가슴으로 기른다고들 하는데 저는 항상 머리로 자식을 낳았다"며 "항상 좋은 자식을 가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는데 이제 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조그만 돈이지만 썩지 않는 곳에, 신선한 곳에 내 재산을 다 주고 가게 돼 (기쁘다)"며 "(머리로 낳은 KAIST의 자녀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 돈 많이 벌어 후세들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강성모 KAIST 총장은 "평생 모은 재산을 흔쾌히 기부해주신 부부의 결정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기부자의 기대를 학교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