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미국을 홀린 아기 판다 ‘수린’




아기 판다 한 마리가 미국인들을 홀렸다. 1936년 12월18일 샌프란시스코항, 중국 상하이를 떠나 온 배에서 진귀한 손님이 내렸다. 우리에 갇히지도 묶이지도 않은 아기 판다 곰이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것. 수린(蘇琳)이라는 이름을 지닌 판다가 겁먹은 표정으로 사람에 매달려 입항하는 사진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판다 이야기는 인간의 모험담이 더해지며 더욱 더 퍼졌다. 판다를 마치 어린 아들처럼 안았던 사람은 루스 하크니스(Ruth Harkness). 여류 디자이너이며 사교계 명사였던 36세의 미망인 루스가 판다를 만나기까지 과정에도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깔려 있었다. ‘신비의 동물’로 알려진 판다의 실체를 추적하다 중국에서 암으로 죽은 남편 윌리엄 하크니스가 못 이룬 꿈을 잇겠다며 단신으로 상하이를 찾았던 루스와 아기 판다와의 만남 역시 극적이었다.

쓰촨성(四川省)의 밀림을 뒤지고 다닌 지 두 달 여…, 지친 루스가 포기할까를 저울질하던 때 어린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따라가 보니 눈도 못 뜬 아기 판다가 있었다. 루스는 1938년 출간한 ‘아기 판다(Baby Giant Panda)’에서 “발견하는 순간 진짜 나의 아기라는 생각이 스쳤다”라고 회고했다.


루스는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전설상의 동물로만 알려졌던 판다가 밀렵에 의한 가죽 상태로 소개된 적은 있었으나 살아 있는 상태로 중국을 벗어난 것은 사상 최초였다. 당연히 동물원들이 따라붙었다. 중국 당태종에게 658년 판다 한 쌍을 선물 받았다는 일본 고서기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쳐도 서구세계에서 처음인 루스의 판다는 이듬해 시카고 동물원에서 공개되며 수십만명의 관람객을 끌었다.

관련기사



판다 열풍은 곧 재앙으로 바뀌었다. 판다를 생포하거나 가죽을 고가에 팔려는 사냥꾼과 밀렵꾼에게 1946년까지 200마리가 희생되고 16마리가 외국 동물원에 팔렸다. 멸종 직전 상태에서 중국 공산정권 수립(1948년) 이후 엄격한 관리가 시행되며 개체 수가 보존되고 있으나 판다는 여전히 비싸고 귀하신 몸이다.

세계를 통틀어 2,239마리 남짓한 판다의 관리권은 전적으로 중국의 권한. 중국은 한 쌍 당 연간 100만 달러씩 임대료를 받고 10년간 장기 계약으로 외국 동물원에 판다를 빌려주고 있다. 어느 곳에서 새끼를 낳든 중국의 소유권은 불변이며 연간 60만 달러씩 임대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각국으로부터 너무 비싸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지만 중국은 요지부동이다. 판다 보호에 투입되는 예산이 각국의 임대료 부담총액보다 훨씬 많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판다는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동물이지만 부담은 결코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에 내는 임대료 말고도 중국인 전속 사육사를 초빙, 유지비와 하루 평균 12.5㎏을 먹어치우는 사료(싱싱한 중국산 죽순) 값을 충당하려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한 마리당 연간 30억원을 훌쩍 넘어간다고. 국산 죽순을 먹일 수 있는 국내 사육 환경에서도 연간 유지 비용은 마리당 약 10억원 남짓한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에도 판다를 유치하려는 수요는 여전하다. 아시아와 유럽 각각 5개국, 북미 3개국에 호주까지 14개국 동물원에서 중국이 빌려준 판다가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은 여기서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중 수교 기념으로 중국에서 판다 한 쌍을 선물 받았으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 푼이라도 달러를 아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조기 반환했기 때문이다. 판다는 이제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아올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 시진핑 주석이 약속한 대로 내년에 판다 한 쌍이 들어온다. 앞으로는 판다를 도중에 돌려보내는 일이 제발 없으면 좋겠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