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해상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잇단 도발에도 꿈쩍 않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마침내 군사력을 동원한 대중견제에 나서면서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미 국방부와 일본·필리핀 등 동맹국들의 개입 요구에도 '대화'를 고집해온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과 직접 힘을 겨루는 '행동'에 나서면서 미국의 대중전략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은 가운데 한중일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벤트를 앞둔 동북아 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로의 미국 해군 구축함 파견을 승인한 데는 지난달 시진핑 주석과의 회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중국의 인공섬 매립이 마무리된 후 강경 대응에 무게를 실어왔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대화를 강조하며 '매파'의 주장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 한반도 상황 등 복잡한 동북아 정세와 경제 의존도 등을 감안할 때 중국과의 대립은 미국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인내심은 9월24일 시 주석과 가진 만찬 회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한계에 다다랐다고 신문은 전했다. 시 주석이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요지부동의 태도를 고수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결국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회동 직후 남중국해 작전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제관계 전문가인 에드워드 루트웍은 "시 주석과의 회담이 결렬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해도 협력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이는 미국의 대중정책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이 하필 중국의 제18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 기간 중 군함을 파견한 것도 강경한 입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게다가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에 대한 동맹국의 불신감과 불안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더 이상 시간을 끌기도 어려워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일본이나 필리핀 등 이 지역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도 더는 개입을 지연시키기 어려웠다"며 다음달 열리는 APEC 정상회의와 말레이시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앞선 이번 군사행동으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동맹국들에 확인시켜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의 대중 노선이 하루아침에 180도 바뀌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바마 정부가 동맹국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침내 중국의 인공섬 건설에 대한 직접 견제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백악관은 양국 갈등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이 사실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다음달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 위안화를 특별인출권(SDR)에 편입시키기로 방침을 굳힌 것도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경제 분야까지 끌고 가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사가 반영된 조치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안보 면에서는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한편 경제 면에서는 중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함으로써 미중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하는 사태는 막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