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방송·연예

[류정필의 음악 이야기] 무대위의 경쟁

무대에 서는 모든 아티스트들은 박수를 좋아한다. 이유는 단 하나! 연극, 성악, 기악, 뮤지컬, 대중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아티스트의 퍼모먼스가 끝났을 때 그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청중의 박수갈채가 얼마나 크게 나오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무대에서의 경쟁은 필연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이 경쟁을 통해 관객은 더 수준 높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2007년 작고한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데뷰할 당시 매우 유명한 지휘자(Francesco Molinari Pradelli)와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고, 리허설에 파바로티가 노래를 너무나 잘 부르자 그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멈추고 "젊은이 내일 공연에 그렇게만 한다면 자네는 성공할 수 있을걸세"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그는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라고 회고했다. 이렇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도 갓 데뷰하는 젊은 성악가에게 시기와 질투를 갖는데 현역으로 활동하는 연주자나 배우들끼리는 오죽 하겠는가…어쨌든 13년후 이 지휘자와 파바로티는 어느 리허설 도중 매우 격렬하게 다투게된다.

필자가 이탈리아에서 이제 막 노래를 시작할 때였다. 베르디의 '리골렛토'라는 오페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필자는 키가 매우 크고 덩치까지 큰 이탈리아 소프라노와 노래를 하게 되었다. 필자는 그녀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너와 나는 사랑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네 키가 너무 크니 나와 이중창 할때만 굽이 낮은 구두를 신어 줄 수 있겠느냐고…. 그녀는 흥쾌히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해 주었고 필자는 무척 고마웠다. 그런데 아뿔사! 마지막 순간 그녀는 공연중에 본인의 외모가 더 돋보이는 길을 선택했고 아주 높~은 구두를 신어, 필자는 그녀를 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달리듯 보여지며 노래한 적이 있다. 다행히 공연은 무사히 끝났으나 그녀는 아무런 사과의 말도 없이 사라졌고 필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푸치니의 라보엠 1막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이중창으로 끝이난다. 이 이중창은 마지막에 두사람이 함께 팔장을 끼고 함께 높은 "도" 음정을 길게 끌어야한다. 이 고음은 소프라노에게도 어렵지만 테너에게는 소리 낼 수 있는 가장 극고음이라 매우 어렵다. 필자가 어느 공연에서 바로 이 이중창을 부르고 있었다. 연습때 소프라노는 정말 쉽게 노래했고 그때문에 필자는 실수하지 않으려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음을 부를때였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소프라노는 평소보다 고음을 길게 끌지 못하고 끊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필자의 팔을 어찌나 세게 꼬집던지 하마터면 소리가 뒤집어질(음이탈) 뻔했다!

우리는 항상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땅면적에 비례해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경쟁은 심하다고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공연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고 힘을 합쳐서 이루어내야 할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기 힘들다. 동료를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덕 중에 최고의 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관련기사



이병관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