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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많은 다국적 기업 R&D센터가 중국으로 몰리는 등 중국 바람이 과학기술계에도 거세다. 도요타와 HP 등 3,300여개 세계 유수의 기업이 중국 대학 등에 공동 연구센터를 설치·운영 중이며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중국인 과학자 투유유가 수상해 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이 정치·경제를 넘어 과학기술계에서도 주요2개국(G2)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과학과 교육으로 나라를 부흥시킨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을 꾸준히 추진, 우수 인재 육성과 혁신적 성과창출을 위한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발표된 중국과학기술발전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의 R&D 투자는 1,900억달러로 미국 다음의 세계 2위다. 특허 출원과 등록이 각각 세계 1, 2위를 차지했고 세계 1등 상품도 1,538개로 2위인 독일의 두배가 넘는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선정한 세계 50대 혁신기업에도 미국을 제외한 전체 기업의 31%를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등 그야말로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한국은 중국과의 협력이 활발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변화된 중국의 과학기술 위상에 맞는 새로운 시각의 협력을 모색해야 하며 크게 세가지 방향에서 우선 접근해볼 수 있다. 한중 양국이 상호 강점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며 양국 공통의 현안 이슈를 과학기술로 대응하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중국 시장을 우리나라 창조경제의 영토로 확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선 중국은 무인탐사선 '창어 3호'의 달 착륙에 이어 독자기술로 개발한 유인 잠수정이 심해 잠항에 성공한 기초·거대과학 강국이다. 우리도 나로호 발사 성공에 이어 달 탐사 사업 등 거대 기초·원천연구를 추진하며 선진국과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황이다. 중국의 인적·물적 역량의 활용이 가능한 거대 기초연구와 같이 효과적·전략적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나가야 한다.
중국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국뿐 아니라 인접국인 우리나라에도 직간접적 환경오염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개최된 한중 과학기술 장관회의에서 양국의 공통 현안을 도출하고 관련 기술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미 우리는 폐기물 처리, 오폐수 정화 등 많은 환경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관련 산업도 활성화돼 있다. 따라서 한중 간 협력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물론 국내 관련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더 나아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까지 발전·연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시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시장은 거대한 만큼 다양한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어 반드시 소비자와 시장 수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들의 중국 진출에 필요한 기술개발도 이러한 바탕이 있어야 한다. 기술혁신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우리 연구기관이 적극 나서고 중국 현지 연구기관과 함께 기술수요를 발굴하고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
최근 중국은 신(新) 실크로드 전략으로 일대일로 계획을 발표했다. 육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해 32개국, 약 40억명의 인구를 잇는 경제벨트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대형 프로젝트와 관련한 막대한 과학기술 수요다. 교통망 구축과 석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필요한 신소재와 첨단 공법, 선박 및 비행기 제조기술 외에도 우리 과학기술계가 참여·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와 중국의 산업·경제발전과 과학기술 수준을 한층 도약시킬 수 있다. 이제 한중 간 과학기술 협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양국은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혁신경쟁에서 상보상성(相補相成·서로 도와 일이 잘되도록 하다)의 전략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