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적십자회비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주인공이 사랑의 도시락을 들고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가 전하는 작은 사랑이 어려운 이웃에게는 큰 희망이 된다는 것을 적십자회비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사랑으로 켜는 희망, 적십자회비로 희망을 키워주세요." 이 대사처럼 적십자회비는 나눔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이를 '30㎝의 기적'으로 부른다고 한다. 각 가정으로 발송하는 모금용 지로용지의 크기를 빗댄 표현이다. 모인 돈이 재난 이재민 구호와 취약계층 생활 지원, 저개발국 개발 지원 등에 쓰여 희망을 전하고 있으니 기적을 언급할 만도 하다. '광제박애(廣濟博愛),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는 적십자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많은 국민이 이런 뜻에 공감해 적십자회비를 꼬박꼬박 내왔지 싶다. 적십자회비는 한국전쟁 고아와 전상자를 돕기 위해 대통령 포고문으로 시작된 모금운동이다. 지로형태로 바뀌기 전인 1996년까지만 해도 통반장들이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거둔 기억이 생생하다. 이 때문에 적십자회비를 공공요금이나 세금같이 꼭 납부해야 하는 걸로 생각한 국민이 상당수였다.

장년층 사이에는 이런 인식이 여전하다. 지금도 지로용지로, 그것도 납부기한까지 정해져 가정에 배달되니 공과금처럼 다가오는 듯하다. 특히 군인들에게는 세금이나 마찬가지였다. 1953년부터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원천징수해왔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유로 올 7월 62년 만에 폐지됐지만 느끼는 부담감은 그대로일 것 같다.

이처럼 준조세로 인식하게 하는 모금방법에다 회비 용처에 대한 불신까지 겹치면서 모금액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다. 올 들어 9월까지 적십자회비 납부율이 21.7%에 그쳐 지난해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단다. 2012년 27.5%에서 해마다 1%포인트 이상 떨어지는 추세다.

국정감사 때마다 적십자사의 방만경영까지 지적되고 있으니 회비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 리 있는가. 국민이 선뜻 참여하게 하려면 먼저 적십자사 조직과 회비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석훈 논설위원


관련기사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