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막혔다. 환경도 그렇고 속도 그렇다. 한국의 방위산업이 내우외환, 사면초가에 빠졌다. 위기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다. 당장 군의 주요 무기 수요가 납품 완료 또는 축소 조정으로 1~2년 안에 막힐 판이다. 내수 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수출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한 경쟁자가 생겨 지금 수준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산비리 수사에 따라 방위산업은 물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수와 수출, 신뢰 측면에서 3중 절벽에 봉착한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제위기 때나 발생하는 대형 기업인수 및 합병(M&A)도 잇따라 나왔다. 삼성에 이어 두산도 일부 방산기업을 팔아넘겼다. 한때는 지정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펼쳤던 '방산업체'라는 업태를 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체를 넘어 불투명한 영업 전망 탓이다. 국내 95개 방산업체의 방산 부문 매출은 지난 2010년 이래 5년째 9조~10조원대 구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수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는 점. 최근 5년간 3배 이상(12억달러 미만 → 36억5,000만달러) 늘어났던 수출을 제외하면 내수는 이미 증가세가 꺾였다고 볼 수 있다. 군의 수요가 거의 충족됐기 때문이다. 자주포가 내수 절벽에 처한 대표적인 경우다.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재래식 화력에 대응하기 위해 K-55 면허 생산과 개량, K-9 독자 개발과 양산대수 상향 조정 등 노력을 펼친 결과 한국의 자주포병은 세계 톱클래스 수준에 올랐으나 역설적으로 물량 발주는 어려운 형편이다.
단순히 '실제로 운용하는 155㎜ 이상 대구경 자주포'만 기준 삼으면 육군의 자주포병 세력은 사실상 세계 1위에 해당된다. 바꿔말하면 군이 더 사주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주문이 없으니 1~2년 안에 수요 절벽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차도 마찬가지다. 신형 K-2 흑표전차의 생산물량이 축소 조정된 208대에 머무는 한 2년 안에 생산이 끝난다. 일거리가 없는 공장이 기술개발은커녕 고용조차 유지할 수 있을까.
내수 절벽을 넘기 위해 방산업체들은 수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으나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다. 저가를 기본 무기로, 파격적 금융지원을 엄호 무기로 활용하는 중국에 한국은 아시아·아프리카·중동시장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최근에는 수주가 유력해 보이던 태국 발주 잠수함 3척의 물량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쟁자도 뛰어들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하려는 일본은 무기수출 3금 정책의 멍에를 버리고 세계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본이 보유한 세계적인 제조업 경쟁력을 감안할 때 버거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최근 태국에서 열린 방위산업전시회에 처음으로 '국가관'을 개설하고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국제 무기시장에 공식 데뷔한 셈이다. 여기에 의욕적으로 방산업체를 키우고 있는 터키와 이란의 무서운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36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던 방산수출액은 10월 말 현재 20억달러에 간신히 도달했을 뿐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올해 방산수출은 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도와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판을 깨고 있다. '방산비리'를 근절한다는 명분 아래 정부합동수사단은 수백억원대로 파악되는 실제 비리 규모를 1조원대로 부풀렸다. 주요 관련자들에게 줄줄이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합수단 수사의 무리성을 말해주는 증좌다. 비리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비리를 비리로 둔갑시키는 행위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이적행위' 이상의 이적행위에 다름 아니다.
비리의 대부분이 해외 도입무기 사업에서 관련됐음에도 '방산 비리의 주범'으로 손가락질받게 된 방산업계의 사기는 침체 일로다. 정신을 가다듬고 활로를 찾아도 모자란 시기에 수사당국의 한건주의와 포퓰리즘에 연구인력이 자살하고 수출 담당자는 해외 바이어에게 '부패기업'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하는 데 진땀을 흘리고 있다.
갑갑한 현실에서 두려운 미래의 예고편이 보인다. 안보의 근간인 방산의 침체와 몰락. '안보 대통령' 이미지가 강한 박 대통령의 집권 정점인 2015년 가을, 한국의 방위산업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한겨울로 진입하고 있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