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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필의 음악 이야기] 음악과 여유

필자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8년쯤 살았다. 그리고 성악가라는 직업 덕분에 스페인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나라, 북쪽으로 핀란드와 라트비아 같은 나라에까지 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아무리 작은 도시를 가더라도 음악이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어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라 뱃사공의 노래와 같이 어느 정도 유명하고 조금은 식상한 일들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함께하는 음악, 잠깐의 여유를 갖더라도 음악과 동행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바(BAR-우리식으로 카페) 문화를 들여다 보면 커피 한잔을 마시러 바에 들른 이들은 거의 모두 바깥 거리를 바라보고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를 만끽한다. 필자가 스페인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던 일 중 하나가 공연이 끝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늦잠을 잔 후, 슬슬 우리 동네 단골 바(BAR)에 가서 음악과 함께 '카페 꼰 레체(Cafe con leche-커피에 우유를 섞은 것)"에 크르와상을 적셔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신문을 보는 일이었다. 그때 느꼈던 여유로움이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음악은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것' 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먹고 살기 바쁜데 한가로이 음악 들을 시간이 어디있느냐 묻는다면 언뜻 대답하기 힘들수도 있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바빠서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음악이 주는 편안함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과 가까이 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정말 바쁜 삶속에서도 음악이 끼어들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신적 삶의 질은 아마도 큰 부자와 거지의 경제력 차이 만큼이나 클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필자는 요즘 우리나라 모 금융기업의 고객을 위한 전국투어 음악회에 출연하고 있다. 확인해 보니 우리나라의 그 수많은 기업들 중 고객에 대한 감사를 훌륭한 음악회로 전국을 돌며 실천하는 기업은 단 한곳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회는 가는 곳 마다 청중이 넘쳐난다. 오늘도 약 3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를 한 후 이 글을 쓰고 있다. 필자의 노래를 들으며 웃음짓는 청중들을 볼때마다 요즘은 필자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르고 있다는 느낌보다 청중들께 웃음의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음악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된다.

1986년, 러시아에서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 덕분에 문화계에도 그 영향을 끼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츠가 60여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생애 마지막 모스크바 독주회를 열었을때 처음에는 어딘가 경직되어 있던 청중의 마음이 그의 연주로 인해 눈 녹듯 녹아내리던 장면을 필자는 감명 깊게 기억한다. 특히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담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작은 꿈) 연주 중 청중이 눈시울을 적시며 음악과 하나가 되는 모습은 진정한 삶의 여유란 바로 이런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했다. 가까이만 해준다면 누구에게나 '여유로움'을 무한제공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음악이다!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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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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