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수능이 한달 남짓 남았다.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 가리지 않고 매진한 수험생, 이를 지켜봐 온 부모의 꿈은 하나일 것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합격’을 직접 확인하는 꿈. 필자도 다르지 않았다. 책상 앞에 ‘oo대학 oo학과 신입생 김나영’이라고 크게 적어두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곤 했다. 간절하게 바라고 바라면 이뤄진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수능을 치르기 전 으레 그렇듯 그 당시에도 수시모집 원서접수는 일종의 통과의례나 다름없었다. 한 번 망치면 만회할 수 없는 수능에 올인하는 건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나 역시 두 곳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한 곳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 치르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 수시모집으로 생긴 동아줄을 꼭 붙들려고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사기’를 당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지방 소도시)에 매주 논술 특강을 하던 강사가 하나 있었다. 그는 지방 도시를 돌며 논술 강의를 하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소개한 것처럼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면 왜 서울에서 직접 학원을 하지는 않는 걸까 하고 의구심을 품지 않았던 게 아직도 후회스럽다. 어쨌든 그는 수업 도중에 지방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원 학교에 맞춰 일대일 합숙훈련을 진행할 계획인데 몇 자리가 비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미 자리가 다 찬 거나 다름없는데 우리 학교 지원자는 특별히 몇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선심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여느 고3 수험생처럼 대학 합격 통보가 간절했다. 당연히 짐을 싸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나와 함께 한 친구도 한 명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원룸이었다. 방을 하나씩 배정받았고 논술 강사가 설명한 것처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맞춤 수업’이 이뤄졌다. 학생은 총 10명 남짓이었다.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선생님이 바뀌었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수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은 갓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이었다. 대학생 선생님을 탓할 수도 없다. 그저 고액 시간 과외를 한 것뿐이니까. 더 기가 막힌 건 그때는 내가 터무니없이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전문 강사가 아닌 20살 학생에게 수업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다고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한참 지나서야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하듯이.
수업료 대부분은 모집책이자 이 일을 총괄한 논술 강사가 챙겼을 것이다. 과외해준 학생은 일당으로 받았을 테고. 그렇게 3일간의 합숙이 끝나고 수시전형을 치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소득은 없었다. 물론 합숙훈련의 교육과정이 미흡해서 떨어졌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일반적인 수준의 강의료가 그때 지불한 값의 1/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숙훈련 비용’이 사기였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절실할수록, 간절해 보일수록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씁쓸한 현실을 곱씹게 만드는 경험이다. 입시를 앞둔 사촌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촌동생의 간절함에서 자꾸 그 시절 내가 겹쳐 보였다. 지나친 간절함은 때때로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인다.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만든다.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늘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