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토요 Watch] 킨포크에 삶을 묻다

디저트 열풍… 제주도 한달살기… 집밥 신드롬…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가 결정된 지난 14일 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자정께 미뤄둔 해외출장을 떠났다. 바쁜 일정에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인구 60만의 조그만 이 도시는 가치·여유·일상·아날로그·영감·유기농 등의 키워드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한 '킨포크' 문화의 고향이자 성지다. 그는 레스토랑, 커피 전문점, 양조장, 와인바 등 각종 개인 상점을 꼼꼼히 돌며 '슬로 라이프'를 두루 체험했다. 이어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개인 브랜드 박람회'에 참석해 중소 유기농 주스 브랜드 등과 상담도 진행했다. '새로운 유통'을 기치로 내건 정 부회장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의 '개인 라벨'까지 살피는 것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는 킨포크 문화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국에도 킨포크 열풍이 불며 소비시장은 물론 생활문화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킨포크는 미국 포틀랜드의 라이프 스타일 잡지인 '킨포크'에서 영향을 받아 자연친화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사회현상을 뜻한다. 킨포크 열풍 속에 이제 소비자들은 크고 화려한 기업 브랜드보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가치를 지닌 개인 브랜드에 환호한다. 소비의 가치를 높이는 힘이 값비싼 물건에서 편안한 시간과 행복한 경험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셈이다. 이에 따라 럭셔리의 개념도 과시와 노출보다는 평범함과 은밀함으로 모습을 바꿨다.

미국에서는 킨포크 문화의 부상으로 개인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이 25%에 육박하는 등 이미 기업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백 개의 체인을 거느린 기업형 외식매장보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개인 음식점과 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누구나 아는 명품보다 나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브랜드에 수요가 몰린다. 화려하고 요란한 결혼식보다 소박하고 작은 결혼식, 획일적인 아파트 대신 소형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등 소비를 넘어 사회 트렌드도 달라지고 있다. 기업들도 달라지는 소비 수요를 반영해 각종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한 킨포크 열풍은 소비생활 양극화지수가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그만큼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질 소비보다는 여유 소비를 통해 한 템포 쉬어가자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형성된 것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은 "킨포크의 인기는 대량생산 시대를 지나 꼼꼼히 만든 수제 제품에 더 가치를 두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소득이 높아지며 건강과 여유에 갈수록 주목하고 있는데다 대중적 인기에 매몰되지 않는 안목이 형성돼 당분간 소비시장의 대세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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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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