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건축의 특징은 건축물 그 자체만로도 기념이자 상징이라면, 한국 건축은 건물과 공간의 집합을 아우를 때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건축물이 놓여있는 공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서양 건축이 광장을 둘러싼 공공의 문화라면 한국은 길과 공간의 문화가 그 특징이지요. 서양의 도시에는 건축물을 둘러싸고 공공의 공간인 광장을 자신들의 사적인 건축물로 확장해 들어가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게 특징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 건축 문화는 안과 밖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어요. 신발을 신고 벗는 행위가 바로 이를 구분해 주는 기준입니다. 길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게 우리의 전통 건축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이지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3일 저녁 7시. 송파도서관에서 열린 고인돌 강좌 ‘시간과 공간으로 풀어낸 서울 건축문화사’ 두번째 강의에 60여명의 시민들이 시청각실을 가득 메웠다. 강의를 맡은 박희용(사진)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서양과 동양의 건축문화를 비교하면서 이같이 설명했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박 수석은 한국건축이 지형지물에 순응하면서 건축물을 조성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영조대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를 예로 들었다. 산경표는 영조 45년(1769년) 여암 신경준이 조선의 산줄기의 계보를 1대간, 13정맥, 1정간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산경표는 산과 물 그리고 평지를 표시하여 마을과 도시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뒤에 산이 그리고 앞에 물이 있는 평지에 마을이 조성되는 것, 즉 배산임수가 주거지 조성의 제 1원칙입니다. 이렇게 조성된 마을이나 도시의 건축물은 지형지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지요.”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우는 데 집중하기 보다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한국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수석은 서양과 동양 건축의 차이를 이해하고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이는 사물의 실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서양의 과학적 합리적 사고로 한국 건축을 보면 독특한 건축물 찾기 어렵고,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부석사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나 산과 강에 둘러싸인 한양도성을 보면, 지형지물을 보전하면서 삶을 담은 공간을 만들었던 한국 특유의 건축 미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공간의 미학이죠.”
강의는 동서양 건축의 차이에 이어 한··중일 3국의 건축문화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으로 계속됐다. 박 수석은 북경 천단, 이화원, 교토의 은각사, 한국의 부석사 등의 건축물을 사진으로 비교하면서 설명해 나갔다. “중국의 건축물은 거대하고 장식이 화려하다면, 일본의 건축물은 절제되고 인공미가 뛰어납니다. 반면 한국은 건물과 땅과 공간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수강생들은 우리 땅에 조성된 건축미학이 서양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을 이해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에 참석한 60대 한 시민은 “땅에 순응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우리 건축물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게 됐다”면서 “너무 흔해서 좋은지를 몰랐던 한국건축의 공간적 미학이 정서적으로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며 강의를 참석한 소감을 털어놨다.
총 5강으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1강. 구본신참과 고종의 공간정치, 2강. 대한제국의 상징적 공간표상 원구단, 3강. 태종과 박자청, 세계문화유산을 만들다-창덕궁의 이해, 4강.한양도성의 건설과 조선의 상징 공간, 종묘와 사직, 5강. 한양에서 태어난 조선 최초의 임금님 세종 등으로 이어진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