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마음코칭] 함박눈과 마음 안의 욕망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간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새벽에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이 마음을 환하게 하고 어린아이처럼 설레게 한다. 눈은 인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선물한다. 반대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도 있다. 그것은 욕망(desire)이다. 그 욕망은 본디 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욕망은 타락했다. 그래서 그 욕망은 인간에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게 한다. 성경에서는 욕망이라는 단어 앞에 죄스럽고(sinful), 악한 것(evil) 그리고 불경건한 것(ungodly)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왜냐하면 타락한 욕망은 인간의 마음을 선한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끊임없는 갈증을 불러일으키게 해 결국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인간을 파멸의 종착지에 도달하게 한다. 이 욕망은 인간 마음 안에서 매일 매 순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예를 들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인 장면이나 유흥가를 보면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꿰이듯이 끌려간다. 이 세상의 수도 없이 많은 일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그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구실을 찾아 마음에 정당함을 세우고 싶어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후회와 고뇌의 반복된 삶을 이어가게 한다.

인간의 마음은 매일매일 욕망에 지배를 당하느냐 그 욕망을 지배하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그 욕망에 이끌려 일시적 충족을 맛볼 것이냐, 그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것이냐의 선택을 하며 산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다.

주말 사극 중에서 고려말 홍인방이 삼봉 정도전과 개국을 꿈꾸는 이방원에게 하는 대사 가운데 이런 게 있다. "하지만 말이다. 잘 생각해봐라. 너의 설렘이 삼봉이 말하는 그 나라 때문인지 아니면 그 나라를 네놈이 갖고 싶어서인지. 지금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겠지. 그걸 아는 순간 네 안의 벌레는 비로소 속삭이기 시작할 거야." 이 대사에서 '마음 안에 존재하는 벌레'라는 대사는 공감이 가는 적절한 표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욕망의 벌레를 마음에 두고 너무 익숙해져 그 욕망 자체가 자기 자신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 욕망은 인간 자체가 아니고 인간이 제어하고 다스릴 대상이다. 인간의 욕망을 악용하는 권력자들은 자기 목적에 맞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인식체계를 백성들에게 심어 권력체계를 운영한다. 권력자가 만든 틀대로 살아야 백성들은 욕구가 충족됐다고 느끼게 만든다. 가장 무서운 권력행사일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룩스는 이를 제3차원적인 권력이라고 표현했다. 더 넓게 보면 이 세상이라는 권력자가 인간에게 심어놓은 욕망의 벌레에 인간은 길들여졌다.

인간은 이 욕망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힘들다. 욕망에서 벗어나는 데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함박눈처럼 말이다.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변화시켰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저 눈처럼 인간의 마음 안에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선한 존재의 힘이 매일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매일 아침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겠다. 새벽에 보여줬던 저 하얀 눈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매일 내렸으면 좋겠다.

/하충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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