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법안 바꿔먹기'로 전락한 선진화법

날치기·몸싸움은 없앴지만 예산 연계한 지도부간 흥정


합의와 번복을 거듭하며 우여곡절 끝에 법정처리 기한(12월2일)을 한 시간가량 넘긴 3일 0시48분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연말까지 대치하며 해를 넘기기 일쑤였지만 그나마 지난 2012년 일명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에는 상황이 나아졌다. 국회법 85조3(예산안 자동 부의 등) 2항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산안 등을 정해진 기한(11월30일)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그다음날(12월1일) 위원회 심사를 마무리한 뒤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고 12월2일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하도록 한 덕분이다.

선진화법은 해를 넘기지 않고 예산안 처리를 가능하게 했고 국회 내 날치기나 몸싸움을 근절시켰지만 이번 정기국회 동안 그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예산안과 연계해 법안을 '바꿔먹기' '끼워팔기'하는 듯 흥정하는 인상을 줬다. 의원들에게서는 "국회가 무슨 마트냐. 법안이 '원 플러스 원(1+1)' 상품이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에 예산 정국이 끝나자마자 여야 할 것 없이 선진화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일 새벽 법안 처리를 마친 뒤 "국회선진화법을 볼모로 한 야당의 발목잡기가 심각하다, 협상 때마다 매번 야당에 속아서 너무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은 예산 시즌 이전만 해도 법안 처리에 있어 야당이 버티기로 일관하면 손쓸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오히려 예산안 처리에서는 선진화법의 혜택을 제대로 누렸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 때마다 야당이 원하는 법안을 하나씩 내줄 수밖에 없어 선진화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야당 역시 선진화법의 한계를 인정했다. 본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들을 만난 문재인 대표도 "국회선진화법에 악용될 소지가 내포돼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미애 의원은 "예산은 예산대로, 법안은 법안대로 하자는 게 선진화법의 골간"이라며 이번에 예산과 법안을 연계한 여당을 비판했다.

여야가 법안 처리를 할 때마다 주고받기 식 협상으로 하면서 국회 상임위원회의 법 심사 기능은 아예 무시되고 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야당 의원들이 상임위 심사절차를 무시한다며 반발이 컸다.

이미 여당은 헌법재판소에 "선진화법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은 "선진화법이라는 나쁜 유산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국회의 정상화와 국가적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선진화법이 법안 처리에 발목을 잡지 않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영 한림대 교수는 "쟁점이 없는 법안을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하려 해도 재적 5분의3 이상이 찬성하도록 한 것은 악법 요인"이라며 "소수의 반대로 법안 통과를 장기 지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살려 과반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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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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