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노동개혁, 기득권의 城만 깨면 끝인가









최근 만난 보수 경제학자가 열변을 토했다. 수용 인원이 한정돼 있는 방이 있다. 그런데 한 번 방에 들어간 사람들이 각종 과잉보호(규제)의 엄호를 받으며 방에서 나오기를 거부한다. 문밖에는 방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득시글대지만 방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 들어갈 수가 없다. 일부에서는 기존의 방을 늘리지 못하게 되자 밖에 간이 천막을 치고 일부 수용을 하고 있다. 방 안과 천막 안의 대우는 천지 차이다. 물론 천막 안에도 못 들어가는 젊은이가 부지기수다. 그는 한탄했다. "과거 방의 규모를 키울 수 있던 시대에는 기존 인원을 유지하더라도 청년들을 입장시킬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방 규모를 늘릴 수 없는 형편에서 내보내는 것을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니 밖의 젊은이들은 어쩌라는 말인가."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방 들고 나기를 수월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 방(한정된 정규직 일자리)에 들이면 쉽게 내보내지 못하니까 기업들이 섣불리 입장을 안 시키고 천막과 같은 임시 방편(비정규직)을 만들어 낸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현재의 일자리와 노동 시장 유연화에 대한 경영계와 보수진영의 기본적인 논리다. 저성장, 제조업의 해외 이전 등 구조적으로 일자리를 늘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가 갈수록 공고해진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방안의 기득권자'들을 방 밖으로 수월하게 내보내도록 제도를 고치면 문제가 해결될까.

수년 전 지인이 다니던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회사는 50대 저성과자에 대해 사내 대기발령을 냈다. 그는 컴퓨터도 없는 책상에서 신문을 정독하며 자리를 지키다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나섰다. 이 경우 대개는 십중팔구 다른 살길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는 버텼다. 그의 책상 달력에는 자녀들의 등록금과 학원비를 내는 날이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었다. 방에서 '강퇴'당하는 순간 교육비, 생활비, 아파트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어 가정이 고스란히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달력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좋은 일자리를 갖지 않고서는 웬만한 내 집 마련, 사교육비, 노후 준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선진국과 다른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방 밖으로 가장들을, 소비자들을, 사회구성원을 밀어내기 쉽게 제도만 고친다고 끝이 아니다. 생애 기대소득이 불안해진 이들은 소비를 더 줄이고, 집을 안 사고, 자녀 출산을 미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방 밖으로 나간다 해도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해 줘야 '인사이더'들도 양보의 여지가 생긴다. 특히 정규직에 대한 보호 조치를 풀어도 이를 사측이 인건비를 깎는 데 남용하지 않고 정부도 부당한 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는 믿음이 양보의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 합의 이후 정부와 경영계의 행태를 보면 과연 노동계가 신뢰할 만한지 의문이 든다.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경제단체는 반대 성명을 내고 여당은 합의와는 다른 법안을 버젓이 제출했다. 향후 입법과정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노동 시장 개혁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은 같이 굴러가야 하는 두 바퀴다. /이혜진 산업부 차장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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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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