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양적완화와 재정확대에도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업들에 대한 투자압력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아무리 부양책을 써도 기업들이 돈을 움켜쥐고 있으면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내년 여름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경기회복이 절실해진 아베 총리는 354조엔(약 3,300조원)에 달하는 기업들의 내부 유보금을 정조준하고 있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전날 재계 인사들과의 관민대화 2차 회의에서 "다음 회의(이달 하순)에서는 산업계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투자를 늘리고 과제는 무엇인지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열린 1차 회의에서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재생상이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 투자하지 않는 것은 중대한 경영판단 오류"라고 재계의 투자를 촉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총리가 직접 구체적인 숫자를 요구하며 압박 강도를 높인 것이다.
아베 총리가 염두에 둔 것은 현재 사상 최대 규모인 354조엔으로 불어난 기업들의 내부 유보금이다. 내부 유보금은 '아베노믹스'의 수혜자인 기업들의 실적개선에 힘입어 2년여 만에 80조엔 가까이 늘었다. 정부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임금 인상률이 2.5%에 못 미치고 설비투자도 더딘 증가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 자민당 내부에서는 "정권 출범 이후 늘어난 내부 유보금만 투자에 돌렸어도 지금쯤 아베노믹스는 '대성공'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지금까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와 정부 재정지출 확대, 공적연금(GPIF)과 공무원연금 등의 주식투자 확대, 최근 우정그룹 3사의 기업공개(IPO) 등 정부의 부양책이 끊이지 않았지만 주가만 간신히 끌어올렸을 뿐 경기가 본격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기업들의 탓이 크다는 서운함이 정권 내부에 깔려 있는 셈이다.
특히 내년 여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2·4분기에 이어 3·4분기에도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베 정권은 다급해졌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 7~9월 일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기준으로 -0.3%에 그쳤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일본 경제가 침체로 재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다급한 요구에 기업들은 선뜻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기업들은 추가 임금인상과 투자확대를 위해 법인세 조기 인하와 각종 감세,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한 민간위원은 정부가 현재 2017회계연도를 염두에 두고 검토 중인 법인세율 20%대 진입시기를 내년도로 앞당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는 아무리 실적이 좋아져도 투자를 늘리지 않은 기업을 향한 불신감이 쌓이면서 기업들의 요구에 따른 감세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