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조선을 사로잡았던 '길거리 스타들'

■조선의 엔터테이너(정명섭 지음, 이데아 펴냄)

조선의 엔터테이너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노비가 양반을 가르치고 심지어 존경의 대상이 됐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조선의 엔터테이너'는 비록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역사 전면에 등장하진 못했지만, 훌륭한 재능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살아간 32명의 조선시대 엔터테이너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지금으로 치면 입시 전문 스타 강사인 정학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성균관의 허드렛일을 하는 수복이었다. 본래 성규관 유생들은 기숙사격인 동재와 서재에 머물러야 했지만 인원이 넘칠 경우 성균관 청소 등 잡일을 맡아하던 수복(守僕)이 거주하는 반촌(泮村)에 머물렀다. 반촌에 머무르는 일부 양반들과 함께 생활하던 정학수는 글공부를 하며 높은 수준의 학문을 익히게 됐고, 성균관 동쪽으로 오늘날 명륜동과 혜화동 일대인 송동이라는 곳에서 서당을 연다. 이 서당은 자그마한 문간방이나 대청마루에 아이들 몇 명을 모아놓고 천자문을 읽는 수준의 서당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강당이 있었고, 수업시간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알리는 경쇠라는 작은 종도 있었다. 이 곳에서 정학수는 양반들을 가르쳤고, 그의 제자들 중 성균관에 입학해 과거에 합격한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노비나 평민들 중 학문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은 많았지만 정학수처럼 노비 신분으로서 많은 양반가 자제를 가르친 예는 찾아볼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정학수처럼 양반과 교류하진 않았지만, 뛰어난 말솜씨로 조선의 저잣거리를 평정한 이들도 놓치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 보면 다음에 바로 알아볼 정도로 못 생긴 조선 후기 최고의 광대 달문.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대중을 휘어잡는 말솜씨와 뛰어난 재주로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그를 기억하는 양반이 한 둘이 아니었고 그의 이름을 딴 달문가라는 노래가 지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한글이 있었지만, 문맹률이 높았던 조선 시대. 글을 못 읽는 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며 호기심과 갈증을 채워줬던 '전기수' 이업복, 양반들의 부조리한 모습을 풍자하며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재담꾼의 제왕 김옹. 이들 모두 조선 시대 최고의 길거리 스타들이었다.

저자는 단순히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인물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데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당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배경, 당시의 시대상을 인물과 함께 녹여 독자에게 전달한다. 정학수 사례를 통해서는 과거를 통하지 않고는 출세를 할 수 없는 조선시대의 폐쇄성과 양반들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 문인들을 놀라게 했지만, 중인이란 신분 때문에 조선에서 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삶을 마친 천재 시인 이언진을 통해서는 신분제 사회 조선을 마주하게 된다.

아울러 길거리 스타들의 사례를 통해서는 조선에 새롭게 등장한 중인 계층 중심의 문화인 여항문화(閭巷文化)를 이해 할 수 있다. 18세기는 한양의 인구가 늘어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각종 놀이문화도 활기를 띠게 됐다. 여항문화의 확산으로 다양한 놀이를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들의 시름을 잊게 해 주고 마음을 달래 주는 길거리 스타들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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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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