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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요 부진과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고전하던 업계 2위의 행남자기가 결국 매각된다.
김유석(사진) 행남자기 대표는 11일 73년 역사를 가진 행남자기 매각을 결정한 뒤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대표는 이날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수 만가지 생각이 든다"며 "다만 가족간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대표이사 사장이긴 하지만 가족들과 충분히 논의를 한 뒤 결정한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행남자기는 1942년 행남사로 창립해 1973년 설립한 행남특수도기와 1980년 합병해 1994년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 행남자기는 1953년 국내 최초로 커피잔 세트를 개발했고 소 등 동물의 뼛가루를 섞어서 구워낸 본차이나 도자기를 자체 기술 개발해 해외에 수출하며 승승장구했다. 다만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 용기 시장에는 플라스틱, 유리 내열 용기 등 실용성을 강조한 밀폐용기가 등장하면서 국내 수요가 크게 줄어 들었고 저가 중국산 제품이 들어온데다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가 국내 시장을 장악하자 국내 도자기 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도자기 업계의 장기 불황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행남자기는 오너 지분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6월에는 김 대표의 할머니인 김재임씨가 보유한 지분 전량(10.52%)을 매도했으며 이에 앞서 김태성 사장과 김태형씨, 김흥주씨가 각각 5.96%, 3.31%, 0.83% 지분을 처분한 바 있다. 행남자기는 이후 태양전지와 로봇청소기 등 신사업 계획을 추진하다가 철회했고 최근에는 트랜드에 맞춰 디저트 전용 도자기나 캐릭터 도자기를 출시했지만 이마저도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행남자기의 영업손실은 25억원 규모 였으며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4억원에 불과했다.
도자기 업계의 매각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실제로 업계 1위였던 한국도자기는 지난 7월 창립 70년만에 공장을 한 달 동안 일시 멈추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성장은 커녕 유지도 어려웠을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70년 동안 국내 도자기의 자존심이었던 행남자기가 매각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행남자기 주식을 사들인 더미디어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 등을 하는 업체로 알려져 있으며 개인투자자인 진광호 씨의 존재는 아직 베일에 쌓여 있다. 더 미디어 측은 공시를 통해 이번 인수의 목적을 경영참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