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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개점 1시간 전부터 고객 몰려… 특별행사장 인산인해
일반 매장도 오랜만에 생기… '빅3' 업체 매출 30%나 껑충
소비심리 반전 계기 마련했지만 준비기간 없이 행사 급조
가전·뷰티·외식 등 참여 외면… 기대 이하 할인 등 문제도
유통업체들도 마진폭 줄여 국가적 행사에 적극 동참해야
4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개점 한 시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문을 열자마자 백화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수년째 불황이 이어지면서 백화점가에서 자취를 감췄던 풍경이다. 특설행사장에는 고객들로 넘쳐나 운신조차 어려웠다. 한 중년 여성은 "사상 최대의 할인행사라 해서 몇 년 만에 백화점에 왔다"며 "기대보다 할인 상품은 적었지만 눈에 띄니 이것저것 사게 되더라"고 말했다. 할인폭이 10~30%에 그친 일반 매장도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직장인 성현주(34)씨는 "뭘 더 할인한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간만에 사람들이 가득하니 쇼핑 분위기가 살아나 좋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연말 쇼핑 축제를 벤치마킹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지난주 말 전국에서 일제히 진행된 가운데 '내수 진작의 불쏘시개'와 '속 빈 강정' 등으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주도의 소비축제에 유통업체가 일제히 동참하면서 얼어붙었던 소비심리에 차츰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블랙프라이데이 효과에 국경절 유커 매출이 더해지면서 지난 1~3일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매출은 가을 세일 기간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6%, 27.6% 늘었다. 특히 신세계백화점은 36.7%나 급증했다. 이 같은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보다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탓이 크다. 지갑 열기를 꺼린 소비자들이 국가 차원의 대대적 행사에 끌려 다시 유통가를 찾은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랜만에 정부가 유통업계를 끌어안는 친소비 정책을 내놓자 불황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반색했다. 반면 대형 행사치고 급조된 탓에 가전·뷰티·패션·외식업계가 동참하지 못했고 할인폭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문제점도 노출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내외국인을 아우르는 소비축제의 장이 되려면 국내 특유의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제조사들이 사전에 초특가 기획상품을 준비하는 등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부와 업계가 소통·협력하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의 장단점과 개선 방안 등을 '7문 7답'으로 알아본다.
◇블랙프라이데이란=미국 최대의 '연말 쇼핑 대목'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미국의 연말 쇼핑은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Friday·프라이데이)에 시작돼 세밑까지 한 달 내내 이어진다.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갈수록 할인율을 높여 '소비 블랙홀'로 불린다. '검다(Black·블랙)'라는 표현은 이 기간 상점들이 연중 첫 흑자를 거두면서 장부를 적자(red·붉은색) 대신 흑자(검정 잉크)로 적는 데서 유래됐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미 블랙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했다. 정부는 올해 중국 국경절 연휴에 시행한 외국인용 '코리아 그랜드 세일'에 내국인을 위한 블랙프라이데이를 더해 대규모 할인 행사를 완성했다.
◇기대치를 밑도는 할인율=최대 90%까지 할인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 유통가의 할인율은 많아야 30% 수준이다. 할인율이 차이 나는 근본 원인은 유통업체가 '재고 부담'을 지지 않는 국내 특유의 유통구조 때문이다. 미국 등 대부분 국가의 백화점·쇼핑몰들은 제조사로부터 직접 제품을 구입, 판매하는 '직매입' 구조다. 시즌 내 매입 상품을 모두 팔아야 다음 계절 신제품을 마련할 수 있어 가격 인하 압력이 크다. 반면 국내 백화점은 30% 내외인 매출 대비 수수료를 받고 재고 부담은 지지 않는 '특약 매입' 구조다. 유통·소매제조 업계 모두 큰 폭의 할인을 강행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
◇가전·패션·뷰티·외식 왜 빠졌나=명품 등 대다수 패션 업체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추동 시즌 신상품이 공개되는 상품 교체기와 이번 행사가 맞물린 탓이 크다. 일부 업체들은 의도적으로 '노세일' 전략을 고수한다. 다수의 패션·뷰티 브랜드들은 기존 백화점 정기세일 동참에 그쳤다. 특히 외식 업계의 참여도 저조해 '거리 축제'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 준비 기간이 필요한데 사전에 고지가 없었다는 게 업체들의 항변이다. 이 때문에 쇼핑과 외식을 연계하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빕스·맘스터치 등 일부를 제외하면 브랜드 참여는 전무했다. 제품 기획에 수개월이 소요되는 가전 업체들도 급조된 행사에 제대로 된 할인 상품을 내놓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은행사 '극과 극'…유커만 공략?=백화점 세일마다 '집객 효과'가 높았던 각종 고객 사은행사도 대폭 줄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대형 3사의 사은행사는 주로 유커에 집중됐다. 이들은 국내 행사가 '그랜드'급이 될 수 없었던 이유로 대형 업체들이 정부 규제 속에 '공공의 적'이 된 현 상황을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몰라 몸을 낮추다 보니 대대적인 불황 타개책 자체가 업계 금기"라며 "이를 감안하면 지난해 세일과도 겹친 이번주 말의 흐름은 사실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연례화 가능할까=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영국의 박싱데이, 홍콩의 메가세일 등은 자국민은 물론 해외 소비자들까지 몰려드는 지구촌 '세일축제'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역시 코리안 그랜드 세일과 연계, 내외국인을 동시 겨냥한 '쌍끌이 전략'으로 소비 진작 및 내수 활성화 불씨를 살리고자 한 시도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아성에 버금가는 우리만의 소비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특히 내국인 소비자들의 해외 직구 규모는 지난해 약 2조원에 달하며 3년 만에 4배가량 늘었다. 행사가 성공하려면 '글로벌 빅 마켓'들과 견줄 만한 양과 질이 요구되는 셈이다.
◇국내 유통구조 못 바꾸나=지난해 국내 백화점의 특약매입 비중은 72.7%로 원조 격인 일본(60% 내외)마저 제친 세계 최대다. 이는 국가 간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통상 백화점을 정점으로 가격 질서가 형성되기에 높은 수수료 부담 없는 패션 브랜드의 직영 로드숍들도 백화점과 같은 가격에 물건을 판다. 한때 직매입 백화점을 추진했던 이랜드가 유명 브랜드들의 입점 거부로 실패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 할 일은 금융사와 맞먹는 유통규제가 아니라 효율적인 유통구조 개선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3년째 제자리 수준인 특약매입 비중을 낮추는 등 유통업계가 솔선수범해야 할 부분도 상당하다. 이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블랙프라이데이와 관련해 "유통 마진을 줄여서라도 좋은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추가 조치를 취하라"고 당부했다.
◇'한국판 소비 축제의 장' 되려면=미국처럼 축제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조사들의 대거 참여가 필수적이고 당연히 블랙프라이데이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패션 노세일 브랜드, 명품까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블랙프라이데이를 겨냥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초특가 기획상품을 연초부터 미리 마련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파격 할인 행사 이후 가격이 정상화되면 매출이 감소하는 '포스트 프로모션 딥' 우려 때문에 노세일 정책을 고수하는 업체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사전 상품 기획은 필수적이다. 이번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제조업체들의 참여도가 저조한 것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행사를 급조한 탓이 컸다는 평가다. 아울러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외식업체 등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해져 도시 전역의 '로드숍' 쇼핑 행사로 거듭나야 한다. 가을 소비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되면 해외 직구족이나 홍콩 등 연말 해외 원정 쇼핑족도 점차 흡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생활산업부 heew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