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서해진의 차와 건강] (12)바위에서 자란 차나무, 풀림의 차가 되다

중국 남부에 위치한 푸젠성(福建省)은 윈난하고 비교되는 또 다른 차의 고향입니다. 특히 푸젠 북부에 위치한 무이산(武夷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그 문화적 바탕에 차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롱차가 탄생했고 무이산의 정산소종은 홍차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명나라 이전 송원 시기까지 무이산 부근은 황실에 차를 납품하는 공차기지이기도 했죠.

무이산 주변으로 개발 중인 반암지구 차밭.<BR><BR><span><div style='text-align: center;max-width: 336px;margin: 0 auto;'><div id='div-gpt-ad-1707113286654-0'><script>googletag.cmd.push(function() { googletag.display('div-gpt-ad-1707113286654-0'); });</script></div></div></span><br>무이산 주변으로 개발 중인 반암지구 차밭.





# 검은 용처럼 생긴 찻잎의 등장

우롱차와 홍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반적인 차의 흐름은 약간의 살청(殺靑)을 통한 녹차류가 주류였습니다. 산차도 유행했지만 형태상으로는 덩이를 짓는 게 보편적이었죠. 그러다가 명나라 초기 덩이를 짓지 말라는 칙령이 계기가 되어 무이산에서는 새로운 실험들이 명말 청초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치면서 잎차 형태의 산차(散茶)로 마실 수 있는 여러 유형의 차를 찾게 되죠. 결국 녹차와 같은 약발효 이외에 산화 정도를 강하게 하거나 그 산화 정도를 중간으로 한 차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우롱차와 홍차의 제차 방법의 특징은 산화 정도에서만 차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시들이기와 비비기 그리고 녹차와 다른 정도의 살청 방법이 진행되는 데요, 당연히 제차(制茶)에 어울리는 찻잎의 크기와 굵기도 달라졌고, 봄차 만이 아니라 이춘차(二春茶)라 불리는 가을 찻잎도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살청과 홍배 과정을 거친 우롱차는 보관에서도 유리했고, 향과 맛에서도 뛰어났으며, 건강과 미용이라는 효과도 매력 만점이었습니다.

우롱차와 홍차가 탄생하게 된 정설은 없습니다.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는 곧 우롱차와 홍차의 제차과정을 상징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롱(烏龍)이라는 청년이 산속 깊은 곳에서 찻잎을 따서 오는 길에 피곤해 찻잎에 기대어 잠을 자게 되죠. 그렇게 찻잎은 살청(殺靑) 이전에 그늘에서 말려지고 비벼지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죠. 정산소종이라는 무이산의 홍차도 전란을 피해 농부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오랜 시간 시들이기를 거치게 되고 병사들에 의해 비벼지는 과정을 거친 후 홍배(烘焙)를 다시 하게 되죠. 어쨌든 우롱차는 잎 모양이 중앙의 녹색에 주변은 홍갈색으로 상감된 형태를 뛰면서 검은 용, 즉 오룡(烏龍)의 모습을 띠게 됩니다.

전설적인 대홍포가 자라는 대홍포계곡의 풍경.<BR><BR>전설적인 대홍포가 자라는 대홍포계곡의 풍경.



# 우롱차를 대표하는 무이암차


무이산에서 시작한 우롱차는 청나라 초기부터 만리차도를 떠나 러시아에 전해지고, 남방으로도 널리 전해집니다. 무이산은 단일 지역을 기준으로 제일 많은 종류의 차가 생산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무이산의 차가 이렇게 백화제방할 수 있었던 기반은 독특한 차나무 산지 때문입니다. 무이산은 젊은 산입니다. 주변 지형에 비해 젊은 무이산은 아직도 풍화 침식이 진행 중이고, 젊은 탓에 영양이 풍부했으며, 주변 반암(半岩)지구에서도 차나무 생장에 가장 적합하다는 난석(爛石) 형태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관목종임에도 표토에서 암반층까지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무이산 차를 ‘암운(岩韻)’이 깃든 ‘무이암차(武夷岩茶)’라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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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암차는 거듭 거듭 진화하고 있습니다. 차나무의 종류에 따라, 산화 정도에 따라, 블랜딩 방법에 따라, 보관 방법에 따라 헤아릴 수 없는 무이우롱(武夷烏龍)이 등장합니다. 차나무를 예를 들어도, 원래 무이산이 고향이었던 명총 계열, 수선이나 불수(佛手)처럼 이주해온 차나무들이 무이산에 새로 적응하면서 얻은 무이수선 혹은 무이불수라는 이름들, 인공교배 혹은 자연교배로 번식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품종의 차나무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산화 정도를 강약으로 조절하면서 선향(鮮香)에서 농향(濃香)까지 달라지고, 훈증하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갖가지 향으로 분화하고, 서로 다른 찻잎을 서로 블랜딩하면서 보여주는 변화는 끝이 없습니다. 어디까지 이를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이산 차는 진화하고 있습니다.

무이암차가 이렇게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진화하는데는 자연 조건 이외에도 인문사상이 큰 몫을 합니다. 섬세하게 차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 섬세한 사상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이산은 오래 전부터 유불도가 번성했습니다. 9.5km에 달하는 구곡계곡(九曲溪谷) 좌우로 36개 봉우리에 99개의 이름있는 바위들이 연결돼 일체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 주변에 100여 개가 넘는 동굴과 암자 등의 수행터가 있었죠. 이 사상적인 분위기는 남송시기 주자(朱子)가 50년 가까이 무이산에 머물며 성리학을 정리할 수 있는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무이산의 산수가 암운(岩韻) 가득한 차나무를 자라게 했다면, 무이산의 사상과 문화는 섬세한 무이암차를 만들어내는 안목이 되었던 셈입니다.

무이산 이외에 여러 곳에서 우롱차 기법의 차가 제작됩니다 현재 지리 표지를 기준으로 하면 크게 네 지역의 우롱차가 유명하죠. 푸젠성(福建省)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민(민)’이라고 하는데요, 무이산의 우롱차를 ‘민북우롱(민北烏龍)’이라 하고, 철관음이 많이 나는 남쪽 안계(安溪) 지방은 민남우롱(민南烏龍), 푸젠성 옆 광동지역은 광동우롱이라 하죠. 중국이 사회주의체제로 바뀌면서 푸젠의 많은 사람들이 대만으로 가는데, 이들은 기존의 대만 차에 푸젠의 우롱차를 결합해 대만우롱차를 유행시켰죠. 지금은 윈난을 포함해 중국 차 산지 곳곳에서 우롱차가 제작되고, 최근 국내에서도 우롱차라는 이름의 차가 제작 출시되기도 합니다.

중국 장이모우 감독이 연출한 인상대홍포 한 장면.<BR><BR>중국 장이모우 감독이 연출한 인상대홍포 한 장면.



# 속병을 해결하고 가슴을 풀어주다

무이산에 가면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인상대홍포(印象大紅袍)’라는 야외대형극이 매일 공연되고 있는데요, 대홍포는 무이산의 우롱차를 대표합니다. 대홍포와 얽힌 스토리에서 우롱차의 성질을 알아 볼 수도 있습니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어느 서생(書生)이 무이산 부근을 지나다가, 배에 가스가 차서 헛배가 부르는 ‘고창병(蠱脹病)’을 앓게 되고, 이 서생의 상태를 호전시킨 것은 차였으며, 이 차는 무이산 암벽에서 자라던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였습니다. 결국 장원 급제한 서생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이 하사 받은 홍포를 차나무에 바쳐 대홍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는 스토리입니다.

우롱차의 임상실험 대상은 건강과 미용 분야에서 두드러졌죠. 2002년에 발표한 <차엽과학(茶葉科學)>지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된 중국저쟝대학 차학과 교재에 따르면, 우롱차의 임상실험 효과는 단백질과 지방의 분해작용에 대한 것과 피지(皮脂)와 보습 정도에 대한 것 그리고 혈압과 중성지방 분야에 있었습니다. 해당 실험은 환자에게 대략 오전과 오후 각각 4그램 정도의 우롱차를 마시게 했고, 관찰 기간은 8주 정도였습니다. 중국예방의학과학원이나 푸젠성중의약연구소 등에서도 우롱차를 이용해 암과 악성종양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효과가 있음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우롱차는 제차 과정을 기준으로 하면 청차라 하고, 마시는 입장에서 차의 성질을 분류하면 토(土)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풀림’의 차라 부릅니다. 이를 내림의 차였던 보이차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보이차는 위장을 중심으로 신장계통의 순환을 도와주고, 우롱차는 위장을 중심으로 심장계통의 순환을 도와주는 차라고 설명하죠.

무이산의 차나무가 그 뿌리를 암반층까지 내리고, 자양분을 잎까지 다시 끌어오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겁니다. 광합성을 위해 햇빛을 수용하는 과정도 녹록치 않을 거고요. 협곡을 이루는 계곡에서 이용할 수 있는 햇빛으로 반사광을 이용하고, 필요한 수분도 절벽을 타고 내리는 물길을 이용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렇게 바위에서 자란 차나무는 차가 되어 우리 몸에 하는 작용은, 오히려 ‘풀림’이었습니다. 따뜻해야 할 배가 차갑고, 시원해야 할 머리가 열 받아 뜨겁고, 배와 머리를 연결하는 가슴은 답답한 상황! 여기에 한 잔의 무이암차는 가슴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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