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나와는 너무 다른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SBS 드라마 ‘애인있어요’ 속 해강(김현주 분)과 진언(지진희 분)은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서로 멀어진 부부다. 각자 고통을 잊는 방법이 달랐을 뿐, 어느 한쪽의 고통이 더 무겁거나 가볍다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언은 해강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둘은 파경을 맞는다. 냉랭해진 부부 사이에 끼어든 설리(박한별 분)는 진언을 사랑한다는 측면에서 훼방꾼처럼 그려지지만 그 보다는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맞춰 ‘진언’이란 아이템을 획득한 면이 더 크다.
‘애인있어요’는 도발적인 제목만큼 복잡하고 독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고로 스스로를 완전히 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는 해강과,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진언의 내적 갈등. 그러면서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둘은 다시 로맨스를 회복하게 된다는 내용은 오늘날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구속된 존재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서로 상처가 남아 헤어지는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랑을 회복하는 것도 오로지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이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결혼 제도 안에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화병(火病)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그 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는 역설적 감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 관계가 더 이상 부부들의 처신을 구속하지 못하는, 힘이 약한 연결이 되어 버렸다.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마음을 회복하면 얼마든지 합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우리 사회가 덜 참게 된 것일까?
진화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5명 이상의 파트너와 사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상 일부일처제는 특정 지역 또는 종교의 문화 코드(기독교)에 기반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인있어요’에서 해강과 진언이 헤어지고 잠시 다른 이성 파트너를 만나는 모습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보다, 앞으로 가슴이 뛰게 할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갈구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재결합’은 절대 과거에 있었던 애정의 회복이 아니다. 한 차례 방황을 거쳤다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도약이자 변화다. 진언과 해강은 잠시 동안 자신들에게 위로가 되어 줬던 사람들의 마음을 저버릴 것인가? 그렇다. 둘의 만남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선택이니까.
남의 생각이나 기분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한 시대다. 결혼 또한 일종의 감정적 지불의사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관계 유지 여부가 갈릴 수 있다. 감정의 할애 수준이 현저히 낮은 사람(감정 할애가 높을수록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려 노력한다) 입장에서는 자신을 희생하고 결혼에 매여 있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정말 안 맞는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지나온 세월의 무게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들도 존재할 것이다. 세월이라는 매몰비용이 클수록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단 걸 증명하려는 욕구가 커지기 마련이다.
안 맞는 사람과 백년해로를 강요하는 건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폭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감정적 결속이 언제 생기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순간순간 자신의 기분에만 충실한 게 후회 없는 선택일지는 의문이다. 제아무리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게 가장 좋다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한계(constraint)가 없는 삶은 방종에 불과하다. 시중에 떠다니는 수많은 심리학과 관계 커뮤니케이션 서적들이 ‘참지 말라’고 호도하는 세상이다. 깊은 사고에 기반한 배려가 아닌, 내키는 대로 심각한 결정을 내려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살피는 노력을 충분히 해야 한다. 어른답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태도도 가지고. 사랑이란 미명 아래 결혼이라는 굳은 약속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건 감정에 충실한 게 아니라 무책임에 가까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