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 대만과 손잡으며 한국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 전방위 압박... 중국 공세 대응할 수 있는 정부 지원 및 규제 대책 절실
삼성전자 등 한국 전자기업들이 중국의 거센 추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업이 경쟁 우위를 가진 분야일수록 공세의 강도가 더하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특히 반도체는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격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제품군으로 꼽힌다. TV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제조업을 찾기 힘들 정도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중국은 반도체에서 다른 분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있는 탓이다.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4년 기준 57%에 이르는데도, 자급률은 29%에 불과하다. 자국이 쓰는 반도체의 71%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 등 외국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최근 한국·미국·일본·대만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배경에는 이런 절박함이 있다. 원천기술인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하청업체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핵심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구사했는데 정부 승인 등의 어려움이 발생하자 최근에는 후공정업체 등 협력업체를 사들이거나 경쟁사 임직원을 스카우트 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 다방면에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국공합작’ 나오나= 중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지난달 SK그룹에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제안을 했다. SK하이닉스 지분 20% 가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중국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자고 제의한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후발주자인 중국은 한국의 손을 잡을 경우 단숨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에 앞서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7월 미국의 또 다른 반도체기업인 마이크론에도 230억달러 규모의 인수 제의를 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D램 시장 3위·2위 업체에 차례대로 손을 내민 셈이다. 올 3·4분기 기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D램 시장 점유율은 각각 27.6%, 19.8%에 이른다.
하지만 두 회사는 칭화유니그룹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중국의 시장진입을 허용할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안정적 3자 과점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중국과 협력하면 단기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손해라는 게 반도체 업계의 진단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는 진행했지만 실익이 전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론 역시 미국 정부의 반대로 인수 불가 방침을 내렸다.
다급해진 중국은 대만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10월 칭화유니그룹이 나서 대만 최대 반도체 후공정업체인 ‘파워텍’을 인수했고 이어 세계 2위 스마트폰 응용프로세서(AP) 회사인 ‘미디어텍’에 M&A를 제안했다. 양국의 ‘불편한’ 관계를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발 빠른 행보다. 대만 내부에서도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반도체 부문에 중국의 투자를 적극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의 대만 반도체 투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과거와 비교하면 분명한 입장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력 유출은 이미 시작됐다. 칭화유니그룹은 대만 메모리 반도체기업인 난야를 이끌었던 찰스 커우 전 회장을 영입해 메모리 시장 입성을 위한 라인업을 꾸렸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D램은 비메모리 반도체보다 수익성이 커 중국의 시장 진입시도가 2016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차원 단속 및 지원책 나와야= 전문가들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용량과 효율을 극도로 높인 반도체나 휘어질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폰 등 따라올 수 없는 제품을 잇달아 출시해야 초격차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기술 진전을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R&D 관련한 세제 혜택을 줄일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도 시설 및 R&D 투자를 감소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M&A 등에서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입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력 유출이나 협력사 인수를 통한 중국의 공세에도 정부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 특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중국의 공세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핵심 기업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 당국을 동원해 M&A 승인을 늦추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인력 유출은 별다른 제재 수단을 내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