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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일 새벽에 여야 원내지도부 협상을 통해 오후2시부터 본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당초 계획한 일정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서로 주고받기를 통해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주요 쟁점법안 5개 등을 처리하기로 했던 국회 스케줄은 줄줄이 지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은 이날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를 반나절도 안 돼 뒤엎었다. 시작은 당 최고위원회의였다. 최고위원들은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법안들을 문제 삼았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을 두고 "경제민주화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고 180도 경제민주화에 역진하는 법"이라며 "졸속으로 정기국회 내에 합의 처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승희 최고위원도 "관광진흥법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우리 당 의원들이 강력 반대하는 법"이라고 반발했다. 유 최고위원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의료민영화의 사전 조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직접 최고위원회의를 찾아갔다. 여당이 요구한 국제의료법과 야당이 내세운 모자보건법·전공의법을 맞바꾸는 협상안에 불만을 제기했다.
같은 시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속 정당(새정연)을 떠나 법사위원장으로서 "심야 합의는 명백한 국회법 위반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5개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해도 법사위에 회부되고 5일의 숙려기간을 두도록 규정한 국회법 59조를 들며 "반드시 오늘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 아니다. 9일까지 정기국회니 그날 처리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법사위에서는 긴급한 경우 숙려기간 없이 법안을 본회의에 올릴 수도 있지만 5개 법안은 이에 앞서 거쳐야 할 상임위원회 통과도 쉽지 않았다. 5개 법안을 심의하는 정무위·교문위·복지위는 야당의 불참 등으로 공전 또는 파행했다.
대리점거래공정법을 담당하는 정무위는 여야 의견이 엇갈렸다.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그거(대리점법) 하나만은 못 간다"며 거래소지주회사법·대부업법·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도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의 요구에 야당 간사인 김기식 새정연 의원은 "오늘 회의에서는 대리점법만 처리할 수 있다"고 버텼다.
교문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학교 인근에 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에 대해 여야 합의와 별개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복지위에서는 모자보건법에서 공공산후조리원을 지자체가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두고 보건복지부가 난색을 표하며 수정을 요구하자 야당이 반발했다.
여야 협상이 반나절 만에 틀어진 것을 두고 여야 원내지도부를 싸잡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협상할 경우 최악의 경우 직권상정을 통해 법안처리가 가능하다지만 양측 모두 법안처리를 너무 쉽게 봤다는 것이다. 양측이 합의한 5개 법안은 상임위 심사에서 각 당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 상임위 통과를 너무 자신했다는 지적이다. 원칙을 강조해온 이상민 위원장에게도 사전 양해를 구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여야 원내지도부의 무능함이 도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