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중한 여가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가 의미 있는 여가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사람들이 알찬 여가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크게 △시간 부족 △경제적 부담 △여가 경험 부족 등이 꼽힌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요인은 세대별로만 살펴봐도 천차만별이다.
20~30대의 경우 일과 여가의 황금률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고민하는 세대다. 어릴 때부터 다채로운 문화적 경험에 노출됐던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과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갖은 노력과 고민을 한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취미 생활에 몰두하고 있는 20~30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저성장 고착화에 따른 일자리 부족 현상 등으로 커진 미래(진로)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동아리, 사회인 야구 동아리 등에 가입해 7년 동안 아마추어 야구 경기를 취미로 즐겼다는 박상훈(28)씨. 하지만 최근 1년간은 제대로 된 야구 경기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졸업 후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게 된 현재 야구를 취미로 즐기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야구를 하려면 장비가 중요한데 글러브 하나, 야구 배트 하나 장만하는데도 10만~20만원씩의 비용이 들고 동아리 회비도 월 5만~10만원 정도"라며 "취업 준비를 하느라 아르바이트 하나 하지 않는 내게 비용이 부담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지금은 한가하게 취미나 할 때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취미 활동이 정말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사회 진출을 위한 스펙 쌓기의 하나로 보인다는 점도 안쓰러운 대목이다. 최근 시간이 날 때면 캘리그래피(손으로 쓰는 그림 문자)와 디자인 등에 몰두하고 있다는 김현정(27)씨는 "솔직히 처음 캘리그래피를 배워보고자 마음먹은 계기는 이 일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과거에는 벨리댄스나 요가 같이 몸을 움직임으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 활동을 많이 했는데 언젠가부터 재미도 있으면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는 취미 활동을 배우자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30~40대는 단연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직장에서도 한창 업무 부담이 많은 시기고 집에서도 육아·집안일 등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기 일쑤다. 실제 서울경제신문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30대의 62.2%가 취미활동을 즐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시간 부족'이라고 답했다. 60대 이상의 응답자 가운데 '시간이 부족해 취미를 즐길 수 없다'는 답변이 전체의 25.2%에 불과했던 점과 비교된다. 더불어 여가가 충분하냐고 묻는 질문에도 30대의 74.7%는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60대 이상은 33%만이 '충분하지 않다'는 답변을 골랐다.
한편 50~60대의 경우 미래에 대한 고민 등이 취미 활동을 즐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시간도 비교적 여유롭다. 이들을 주춤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부족한 경험이다.
50대 직장인 송영호씨는 주말 아침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을 자주 가지만 사실 등산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저 주말 아침마다 집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것이 싫어 집을 나선다. 곧 은퇴를 앞둔 마당에 송씨가 색다른 취미를 개발해보려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먹방' '쿡방' 등 요리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렸던 한때 학원을 수강하면서까지 요리에 몰두했다. 하지만 기초반을 수료하고 난 후에도 송씨는 자신의 취미를 '요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송씨는 "요리사가 될 것도 아닌데 비싼 비용을 들여 다음 단계인 자격증반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학원을 관두자 어설픈 실력으로 요리를 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고 대체 이 취미를 어떻게 완성해나갈지 알 수 없게 되자 자연스레 점점 흥미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노후 준비에 미흡했던 상당수의 60대 이상에는 금전적인 부담도 상당한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노년층의 여가 활동 유형화 및 영향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어르신들의 여가활동별 참여 비율(중복조사)은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TV 시청 및 라디오 청취가 93.3%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운동참여(32.8%), 친목활동(23.9%), 종교활동(17.6%)이 뒤를 이었다. 문화예술 관람 및 창조적 활동(서예·사군자 등)으로 여가생활을 보내는 노인은 0.9%에 불과했고 여행을 즐기는 노인도 1.2%에 그쳤다.
한 전문가는 "나이뿐 아니라 성별, 직업(소득)별로도 취미 활동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 등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다"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취미 생활을 권장하고 그를 통해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설을 많이 확보한다는 식의 큰 틀의 해결책보다 각 세대와 상황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