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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인 톡!톡!]백승욱 루닛 대표, “인공지능과 의학의 만남, 이미지인식 기술로 새 시장 연다”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로 의료시장 뚫는다

[벤처인 톡!톡!]백승욱 루닛 대표, “인공지능과 의학의 만남, 이미지인식 기술로 새 시장 연다”
<포춘코리아 FORTUNE KOREA 2015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의 등장으로 앞으로 20년 후에는 인간이 수행하는 직업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고 한다. 실제로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인공지능 기술 ‘딥러닝(deep learning)’과 관련한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 루닛(Lunit)은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의학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 창출에 나선 루닛의 백승욱 대표를 만나 이 분야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작은 로봇이 사람 몸으로 들어간다. 악성 종양을 발견한 로봇은 내장된 레이저로 종양을 제거하고 상처 부위를 봉합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고도화된 인공지능 기술과 의학의 조합은 이 같은 영화 속 장면을 현실 세계로 이끌고 있다. 백승욱 루닛 대표는 말한다. “최근 알파벳(구글 지주회사)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조만간 인공지능이 의료계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희도 에릭 슈미트의 이 발언에 주목하고 있죠. 루닛의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가 바로 인공지능과 의학의 결합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흰 이 분야에 대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진단의 정확도를 높여 의학계와 환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거겠죠. 이는 루닛이 해결하고자 하는 당면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진일보한 루닛의 이미지 인식 기술

기자는 루닛에 대한 소개 자료를 처음 받았던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가 가득했다. 과연 이 스타트업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을 어떻게 해야 쉽게 기사로 소개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우선 루닛 스스로가 밝힌 회사 설명을 소개한다. ‘루닛은 심층학습(Deep Learning)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이는 인간의 뇌가 동작하는 방식을 모방한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백승욱 루닛 대표를 만나자마자 기자가 처음 던진 질문도 그 부분이었다. 좀 더 쉽게, 평범한 수준의 지식을 보유한 기자도 이해하기 쉽게 루닛의 사업을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백승욱 루닛 대표(사진)는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로 의료시장 공략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BR><BR>백승욱 루닛 대표(사진)는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로 의료시장 공략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많이 어렵죠?” 빙그레 미소를 지은 백 대표는 루닛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루닛은 쉽게 말해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에 접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우선 이미지 인식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백 대표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이미지 인식 기술을 소개했다. 예컨대 한 커피숍에서 누가 봐도 멋들어진 그림 한 장을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그렸는지, 제목은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주변에는 그림에 대한 어떠한 소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미지 인식 기술은 여기서 활용된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이 그림을 찍어 인식 기술이 탑재된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면 이 그림의 제목과 화가의 이름이 나타난다. 그림의 구도와 색감을 자동으로 파악해 인터넷상에 있는 수많은 그림 정보 중 적합한 내용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루닛의 기술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일보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내용, 즉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을 이미지 인식 기술에 탑재하는 것이다. 백 대표는 말한다. “기존의 이미지 인식 기술이 그림 한 장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데 그쳤다면, 딥러닝 기반의 기술은 그림의 일부분까지 찾아내 그 정보를 전해줍니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만종, 미인도 같은 여러 장의 그림을 타일처럼 붙여 하나의 도면을 완성해냈다고 가정해봅시다. 딥러닝 기반의 이미지 인식 기술은 습득한 수많은 그림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면 부분 부분에 있는 각각의 그림을 찾아내 정보를 제공합니다. 딥러닝을 기반으로 습득한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도는 더욱 높아지게 되죠.”

루닛은 이러한 이미지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은 확고한 목표를 갖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지만, 루닛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변화와 성장을 모두 맛본 루닛

불과 1년 전만 해도 루닛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회사 이름부터 달랐다. 당시 회사명은 루닛이 아닌 ‘클디(CLDI)’였다. 사업 분야도 지금과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지 인식 기술에 기반을 둔 사업을 펼쳤지만, 타깃 시장이 의료가 아닌 패션 영역이었다. 루닛의 변화에는 지난해 사업차 방문한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만 해도 저희는 패션 영역에서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다수의 실리콘 밸리 기업을 방문했었죠. 글로벌 유통 플랫폼에 저희 기술이 탑재되면 급성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었어요. 성공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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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승욱 대표의 설명을 들은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매출과 트래픽을 증가시킬 수 있어야 좋은 기술인데,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었다. 게다가 ‘클디’라는 회사 이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누구도 클디라는 이름을 쉽게 발음하지 못했다. 클디(CLDI)가 아닌 ‘씨엘디아이’라고 부르기 일쑤였다. 분명 글로벌시장에서 통할 것이라고 자신감이 가득했던 백 대표는 당시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큰 변화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사업분야를 바꿨다. 기존의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하되, 패션이 아닌 의료분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의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백 대표에게 이 같은 결정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의학이었을까? 백 대표는 말한다. “시작은 단순했어요. 이 기술이 병원에서 활용되면 의료 시장 전반을 혁신할 수도 있다는 지인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죠. 이후 수십 건의 의학 관련 논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유독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전 세계 병원에서 촬영되는 수천만 장의 엑스레이 사진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표준체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죠. 만약 이러한 데이터베이스에 저희 인식 기술을 접목해 컴퓨터가 스스로 질병을 판독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인다면 학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보다 전문성이 짙은 의료 시장에 발을 내딛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백 대표는 의학 분야 지식이 전혀 없는 공학도다. 그에게 도움을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백 대표에게 단비가 되어준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국내 바이오메디컬(Bio Medical·의학과 IT기술의 융합을 골자로 한 학문)분야의 대표주자인 정지훈 박사였다. 루닛의 기술과 사업 내용에 공감을 느낀 정 박사는 현재 루닛의 의학 지식을 책임지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백 대표는 곧이어 회사 이름을 바꿨다. 딥러닝 기반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배운다는 뜻의 러닝(Learning)과 구성단위를 뜻하는 유닛(Unit)을 합친 루닛(Lunit)으로 새 회사명을 정했다. 백 대표는 말한다. “루닛으로 사명을 바꾼 후 해외에서도 좀 더 쉽게 저희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영위하는 사업을 정확히 알릴 수 있는 사명(社名)이기도 했고요. 일단 발음이 되잖아요. 그게 가장 큰 소득이죠(웃음).”

백 대표는 사명을 변경하면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고 말한다. 클디는 창업을 결심하기 전부터 이미지 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팀의 이름이었다. 창업, 나아가 이미지 인식 기술 개발의 시작을 함께한 클디는 백 대표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클디의 뜻이 뭔지 아세요? 구름을 뜻하는 클라우드(Cloud)와 디자이너스(Designers)의 합성어입니다. 구름같이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우리 스스로 디자인해보자는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있죠. 처음 이 기술에 관심을 두고 개발에 돌입했을 때의 열정이 클디라는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백승욱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패션이 아닌 의료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BR><BR>백승욱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패션이 아닌 의료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백 대표는 카이스트(KAIST) 전자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밟은 공학도다. 그가 창업을 처음 접한 시기는 지난 2002년, 학부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 대표는 선배가 창업한 ‘에빅사(Evixar)’에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스타트업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에빅사는 ‘컴퓨터 원격 조정 프로그램’으로 IT업계에서 꽤 이름을 알리고 있던 스타트업이었다. 에빅사에서 연구를 진행해온 백승욱 대표는 곧 자신의 사업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그렇다고 딱히 아이디어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명확한 방향은 세우고 있었다. 바로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2009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지금의 루닛을 있게 한 이미지 인식 기술, 그리고 딥러닝을 처음 접하게 된다. 백 대표는 말한다. “대학원에서 제가 연구했던 분야는 회로설계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딥러닝을 접하게 됐죠. 뇌의 신경회로와 같은 구도를 컴퓨터를 통해 구축하는 딥러닝은 제가 연구했던 회로설계와 방향성이 일치했어요. 무엇보다 굉장히 어려운 연구과제였죠. 기술 장벽도 높았고 상용화도 어려운 분야임이 분명했어요. 일종의 승부욕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바로 연구팀을 꾸려 기술 개발에 착수했죠.”

이후 백 대표는 후배들을 모아 ‘클디’라는 연구팀을 만들었다. 지금도 카이스트에선 백 대표의 후배들이 클디 소속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원 졸업 후 루닛에 합류할 예정이다.

백 대표와 후배들이 함께 만든 이미지 인식 기술은 글로벌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 이미지 인식 기술 관련 학교, 기업들이 참가하는 ‘이미지 인식 기술 대회(ILSVRC)’에서 종합 순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대회 준비 기간이 불과 3개월밖에 안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족할만한 성과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후에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투자도 이어졌다. 글로벌 시장형 창업 사업화 R&D 사업(TIPS)에 선정돼 5억 원을 지원받았고 최근에는 국내 벤처캐피털로부터 1억 원을 추가로 투자받기도 했다.

◆루닛, 고도화된 기술로 전 세계를 누빈다

루닛이 개발 중인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는 의사를 대신해 질병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유방암 환자의 MRI 촬영 사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의사는 사진을 통해 육안으로 종양의 위치와 크기를 감별해낸다. 반면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는 종양의 위치와 크기는 물론, 종양 내 변형된 세포나 특이한 조직까지 찾아낸다. 조기 진단과 더불어 발병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변이 현상의 객관적 분석도 가능해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도울 수도 있다. 물론 수많은 유방암 환자들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MRI 및 CT 촬영 사진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밑바탕이다.

이처럼 루닛의 기술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또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만큼 높은 정확도와 신뢰성 제고는 필수적이다. 그만큼 상용화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백 대표의 표정에선 결코 조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점진적으로 기술을 고도화면서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백 대표에게 루닛 기술의 상용화에 있어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는 ‘인종’을 꼽았다. 백 대표는 말한다. “아시아인, 백인, 흑인들의 생체 조직은 전부 다릅니다. 악성 종양도 인종에 따라 구성과 모양이 제각각이죠. 이를 정확하게 판독하기 위해선 수백만 장의 인종별 종양 사진이 필요합니다. 이를 축적해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하는 거죠. 상용화의 성공 역시 인종 별 정보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국내 의료계에서 저희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거예요. 국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해외 의료계에서도 저희 서비스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백승욱 대표를 만나며 기자가 느낀 건 백 대표 스스로가 이 기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 어느 연구팀과 맞붙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정확성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백 대표의 확신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백 대표는 말한다. “작년 이미지 인식 기술 대회에선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구글이 공동 1등을 차지했어요. 올해 저희도 루닛이라는 이름으로 이 대회에 참가합니다. 물론 구글과 옥스퍼드 대학을 긴장시킬만한 성과를 올릴 것입니다. 아마도 올해 대회는 루닛의 이름을 전 세계 이미지 인식 기술 시장에 각인시키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김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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