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갈 길은 정해졌다.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192개 국가가 모여 합의한 신기후체제의 핵심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언이며 이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이 시작됐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교토의정서 체제는 최대 온실가스 배출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이 서로 눈치를 보며 가입하지 않아 사실상 무력화돼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국내에서 신기후체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미국이 의회 동의 없이 파리협정에 가입할 수 있도록 파리협정의 문서 형식에 신경을 쓴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내년 4월22일 파리협정에 미국과 중국이 서명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번 파리협정서 채택으로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가가 신기후체제 내에서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량 7위인 우리나라도 교토체제에서와 달리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담하게 될 것이다.
신기후체제에서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의무는 국가별로 일률적으로 몇 %씩 감축한다는 하향식이 아니라 국가가 자발적으로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5년마다 정기적으로 목표달성을 확인하는 상향식 방법으로 설정했다. 일부에서는 각국이 제출한 감축계획을 담은 자발적기여방안(INDC) 이행을 강제할 수 없음을 이유로 파리협약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법은 강제수단으로 이행되는 것보다 국가들의 컨센서스로 이행될 때 효과가 배가된다. 신기후체제 타결과정을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에 대한 컨센서스를 도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배출전망치 대비 37%를 줄이겠다는 자발적 감축계획을 제출했다. 화석연료 의존율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높은 우리나라에서 37%의 감축목표는 에너지산업 구조개편 없이는 불가피하다. 산업계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체제 개편은 진작 갔어야 할 길이다. 위기는 기회다. 11월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40년까지 화석연료 비중은 36%로 감축될 것이며 반면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4%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국내적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보급·확대를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여 현재 전체 전력생산의 1.9% 남짓한 신재생에너지 부분을 대폭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외로 눈을 돌려 국내에서 개발된 신재생에너지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가 및 군소 도서국가의 에너지 산업 구조변경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 기술투자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분을 우리나라의 기여분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개발도상국가들과 군소 도서국가들의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선진국들의 재정적 지원 규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2016년 제22차 당사국총회에서 점검하기로 한 '손실과 피해' 주제에 대해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의 책임을 강조하며 재정지원을 요구할 것이고 선진국들은 책임 논의보다 개도국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지원하는 수준으로 막으려 노력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재정적 지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도상국가에 투자 형식으로 지원해 국제사회의 의무도 이행하고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분 기여도도 높이는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소병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