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대한민국 기업 현주소를 말한다] <1>기업 위기, 어느 정도길래

"내후년부터 폭풍우 온다"… 기업 신사업찾기·사업재편 발등의 불

"성장률 1%·10년 저성장 늪 버틸 체력 키워야"

삼성 등 계열합병·지배구조 개편 물밑작업 한창

경쟁력 확보 위한 초대형 M&A 소문도 잇따라

대우조선해양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근로자 한 명 보이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현장이 조 단위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는 조선업과 우리나라 제조업의 현주소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서울경제DB


"내후년(2017년)부터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된다는 전문가의 전망을 바탕으로 경영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향후 10년간은 전 세계에 저성장이 예상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4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대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자율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에 나서고 있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간데다 중국 경기는 올해부터 한풀 꺾이기 시작했고 저유가에 따른 신흥국 경기침체로 장기침체가 올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6.8%, 내년은 6.3%로 내다봤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활동은 5년 연속 둔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공교롭게도 국내 부동산도 공급과잉으로 인해 오는 2017년에는 거품이 꺼지고 깡통주택이 속출해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온다. 내년부터 경기침체가 본격화해 2017년부터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다는 우울한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0년 장기침체론에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며 "올 들어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은 신사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사업재편으로 몸을 가볍게 해 긴 싸움에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재계는 신사업과 사업재편을 통한 몸만들기에 비상이 걸렸다.

가장 빨리 움직이는 곳은 삼성이다. 삼성은 지난해 한화그룹과 1차 빅딜을 통해 방위 산업과 화학 계열사 일부를 넘겼으며 올 들어서도 롯데에 화학과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을 팔기로 했다. 그룹의 중심을 전자와 바이오·금융으로 바꾸면서 비주력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해외 생산거점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각종 경비와 지원조직 축소에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지금 경기침체에 대비하는 것이다. 현금을 최대한 비축해 경기가 더 나빠졌을 때 매물이 나오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쪽에서는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지만 신사업 진행속도는 더 빨라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9일 자동차 전자장비 부품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고 전기자동차 배터리에서도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초격차 전략을 세웠다.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르면 이달 중 제3 공장 기공식을 열 예정이고 바이오에피스는 지난달 유럽의약품청(EMA) 약물사용자문위원회로부터 승인권고를 받았다. 사실상 유럽 시장 판매의 길이 열린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메르세데스벤츠·BMW와 경쟁할 신차 'EQ900'를 내놓고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수소차를 비롯해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경쟁력은 꾸준히 높여가고 있고 스마트카 시대를 대비해 자동차용 반도체 설계에도 직접 뛰어들 예정이다. 러시아와 브라질 같은 신흥국에서 환율과 내수침체로 고전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고 있다. 브라질과 러시아·인도·멕시코를 뜻하는 브림스(BRIMs)에서의 현대차 점유율은 11.5%(10월 기준)로 역대 최고치다.

최태원 회장이 복귀한 SK도 CJ케이블넷 인수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며 신사업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LG그룹은 구본준 회장이 지주회사로 옮겨 신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삼성과 한판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과 빅딜을 한 한화와 롯데그룹은 화학 분야를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고 코오롱과 효성도 섬유와 신소재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GS그룹도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형 M&A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만 해도 전장 부품 기업에 대한 대형 M&A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LG 역시 전장 부품 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SK도 추가 M&A에 나설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1월 이후 국내 30대 그룹은 M&A에 총 37조7,897억원을 투입해 239개사를 인수했다. 특히 올해는 삼성·롯데, SK·CJ 같은 초대형 M&A가 이어지고 있다.

사업재편 속도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공식 부인하지만 자동차 관련 사업에 집중하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한 계열사 합병 검토작업이 물밑에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조선과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해운업도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임금반납·경비삭감 같은 고강도의 체질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의 사업재편과 신규 M&A는 글로벌 장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 아래서 나오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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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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