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연이은 대박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모아온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최근 들어서는 합병 결의 이후에도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원금(공모가)과 이자수익 보장을 발판으로 기업 합병 후에는 주가가 급등해 알짜 투자처로 인식됐던 스팩이 증권사들의 과잉경쟁 속에 투자 매력이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합병 대상 기업은 한정된 상황에서 스팩만 급증하다 보니 합병기업의 몸값만 올라가고 스팩의 몸값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스팩은 지난달 상장된 '골든브릿지 제4호 기업인수목적회사'까지 42개로 상장이 예정된 곳을 포함하면 47개에 달한다. 2010년 스팩 17개가 처음 상장된 후 2011년과 2012년 한 건도 없다가 2013년 2개, 지난해 26개가 상장된 것을 고려할 때 올해 스팩의 인기는 열풍에 가까웠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스팩 합병사례가 늘자 앞뒤 안 가리고 스팩에 뛰어든 증권사가 많았다"며 "기업가치를 맞춰 합병할 수 있는 기업이 한정된 마당에 투자자 유치가 잘 된다고 너도나도 스팩에 뛰어든 증권사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스팩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연간 스팩과 합병할 수 있는 기업은 10개도 안 되는 형편이어서 합병 대상 기업의 가치가 스팩보다 높아져 합병 실패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0년 이후 상장된 100여개 스팩 중 합병에 성공한 곳은 22개에 불과하다.
스팩 시장의 경쟁 과열 속에 최근 합병심사를 청구했거나 합병심사를 통과한 KB 제6호스팩, 유안타 제1호스팩, 교보 제4호스팩 등의 주가는 공모가인 2,000원을 밑돌고 있다. 바이오로그디바이스와 8일 합병해 상장한 교보 3호스팩은 상장 이슈를 타고 이날 상한가를 기록하며 2,145원으로 공모가를 겨우 넘었을 뿐 수개월간 합병 이슈 이후에도 1,90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해왔다. 자동차 와이퍼 블레이드 기업인 캐프와 합병해 상장을 추진 중인 유안타 1호스팩의 주가도 1,880원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내년 1월 모바일 게임사 썸에이지와 합병을 앞둔 KB 제6호스팩의 주가도 이날 1,855원에 장을 마쳤다.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업체인 닉스테크와의 합병을 추진 중인 교보 4호스팩주가도 1,930원에 머물러 있다.
대형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스팩 간에 합병 대상 기업을 두고 경쟁이 잦아지면서 기업가치를 높게 산정해주는 기형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면서 "합병 소식이 전해져도 합병 대상 기업이 고평가돼 있어 스팩 투자자는 주가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후죽순 상장된 스팩이 정리될 때까지 상당 기간 스팩들의 주가는 공모가를 하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스팩이 저평가된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비상장 우량기업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해 설립된 서류상 회사인 스팩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상장한 뒤 비상장 기업을 3년 내 합병하게 된다.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청산과정을 거치면서 원금(공모가)과 이자수익이 보장된다. 예를 들어 공모가 2,000원인 스팩을 1,900원에 매입하더라도 3년 후 청산 절차를 밟을 때 공모가 2,000원에 2%대의 이자를 돌려받아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저평가된 스팩에 투자할 때도 '옥석 가리기'는 필요하다. 스팩 상장에 경험이 많은 한 시장전문가는 "기업 합병의 경험이 없는 증권사 스팩보다는 스팩 발기인들이 합병전략을 가진 전문가들이면서 기업공개(IPO) 주관계약이 많은 증권사의 스팩에 투자하는 편이 좋다"며 "지정감사 결과가 나오는 내년 3월 이후 과열된 스팩이 정상화되면 다시 주가가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