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가운데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개정안(기촉법)'이 일몰 시한에 쫓겨 핵심내용은 빠진 채 2~3년 연장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여야합의가 늦어질 경우 구조조정에 큰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5일 법안소위를 열었으나 기촉법 등 쟁점 법안의 합의에 실패했다. 여야는 26일 오후 다시 소위를 열어 기촉법 등을 심의할 계획이다. 다음달 1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상임위 소위와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여야가 합의하더라도 시간은 빠듯하다.
새누리당 소속 정우택 정무위원장이 발의한 기촉법 개정안은 워크아웃의 대상을 넓히고 일부에서 문제 삼던 채권단 간 형평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워크아웃의 대상을 기존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기업에서 모든 기업으로 넓혔다. 참여하는 채권자도 기존 채권 금융기관에서 모든 금융채권자로 확대했다. 일부 대기업과 대형 은행 중심의 워크아웃에서 중소기업과 금융기관이 아닌 곳도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워크아웃에 반대하는 채권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반대채권매수청구권 행사 시 매수가액에 청산가치가 보장하도록 했다.
정작 기촉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올해 말로 일몰이 종료되는 기촉법을 상시화한다는 것과 금융감독원장이 채권단의 이견을 조정한다는 내용 두 가지다. 정부는 기촉법을 상시화할 경우 내년부터 본격화할 한계기업 정리에 효과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촉법에 따라 워크아웃 시 채권단 75%만 찬성하면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채권단 100%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자율협약보다 빠르게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또 지금까지 워크아웃 진행과정에서 채권단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암암리에 개입했던 관행도 앞으로는 조정권한을 명시해 범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조계와 야당은 기촉법이 금융당국의 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물론 법조계도 기촉법 상시화는 위헌 요소가 있다고 비판한다. 기촉법이 지금까지 두 번이나 연장하며 일몰법으로 운영돼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기식 새정연 의원은 "기촉법과 유사한 사례가 외국에 없는데다 관치금융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기촉법 상시화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대안으로 법정관리 제도를 보완한 채무자 및 파산에 관한 법률(도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놓은 상태다. 기촉법의 장점을 통합 도산법에 담아 함께 논의하자는 것이다. 대법원도 정 위원장 발의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헌법상 사적 자치의 침해, 재산권의 침해 등 위헌성 소지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기촉법 상시화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상시화에 반대했다.
문제는 국회에서 기촉법이든 통합도산법이든 기업 구조조정 근거법 합의가 미뤄지면서 하루가 급한 한계기업이 법정관리로 직행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야가 올해 말로 끝나는 기촉법을 연장하지 못하면 워크아웃 제도가 사실상 없어지는 셈이어서 구조조정에 혼란이 오게 된다. 그렇다고 통합도산법을 연내에 논의하기도 시간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기촉법이 일시적으로 없어졌던 2006년과 2011년 채권단은 자율적인 합의도출에 실패했고 현대LCD·VK·BOE하이디스·현대아이티·삼부토건·동양건설 등이 워크아웃이 중단돼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여야는 기촉법에서 금감원장의 조정권한을 삭제하고 상시화가 아닌 2~3년간 한시 운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나마 반쪽짜리가 된 기촉법마저 여야 합의가 늦어질 경우 연내 국회 본회의 의결이 불투명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가장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채권단의 목소리가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금당국이 일부 개입해서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워크아웃이 아직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세원·조민규기자w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