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강남권을 비롯 전국 중심지를 첨단 디지털 전시물들로 가득한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것이 특별법 입법 취지였으나, 관계 부처 간 파워 게임으로 무산된 것이다.
3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부터 안전행정부와 협의해 ‘디지털 사이니지 특별법’ 초안을 작성하고도 최근 입법을 포기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미래부가 특별법 제정을 포기하는 대신 안행부가 소관하는 옥외광고물법 및 시행령을 ‘옥외광고물의 관리와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으로 개정하기로 했다”며 “시행령에는 디지털 사이니지 규제개선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부는 이와 별도로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육성방안을 마련해 오는 7일 총리실 산하 정보통신전략위원회 회의에 상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특별법 포기에 대해 미래부는 “특별법이 아니라도 정보통신융합및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등 다른 법을 통해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 관계자는 “특별법은 광고물 관련 행정 권한 가운데 디지털광고물에 대한 감독과 정책 운용의 창구를 사실상 미래부 소관으로 일원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그러다 보니 소관부처였던 안행부가 미래부에 협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소관 법률인 옥외광고물 관리법을 고쳐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식으로 정책 주도권을 지키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처간 힘겨루기가 특별법 무산의 이유라는 시각이다. 실제 특별법 초안에는 산업의 진흥과 지도감독, 안전검사, 사업자 등록·접수 등 주요 권한과 책임은 미래부 장관으로 일원화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미래부 장관이 수장을 맡고 유관 부처 고위공무원들을 위원으로 참여시키는 가칭 ‘디지털사이니지 진흥위원회’가 설립돼 3년마다 관련 산업분야 진흥계획을 세우고 지자체에 협조를 강제할 수 있는 등의 구상도 녹아 있었다.
정부는 대신 기존 옥외광고물 관리법 등을 손질해 규제를 개선하고 디지털 사이니지 육성정책을 별도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마저 땜질식 처방이라는 아쉬움을 사고 있다. 부처와 지자체별로 분산된 정책 운용의 비효율적 구조를 풀지 못한 상황에서 육성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데다 근본적 해법도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현재 옥외광고물 관리법은 주로 규제 일변도인데다 안행부에서 총괄하지만 현장의 행정 감독과 집행은 지자체가 권한을 위임 받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특별법 좌초 소식에 사이니지 사업에 투자해온 업계는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사이니지 기술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데도 정작 내수 시장은 제도의 후진성 등에 막혀 제자리 걸음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사이니지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전세계 점유율이 각각 25%와 9%를 넘어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핵심기술인 통신과 솔루션도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계 시장조사기관인 IHS는 지난해 전세계 디지털사이니지 시장 규모가 150억 달러대에 육박했으며 이후에도 급성장해 오는 2018년 2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도 디지털 사이니지가 산업 전체에 미치는 생산유발효과는 2020년 32조원에 달하고, 고용 유발효과는 12만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co.kr
◇디지털 사이니지=고전적 옥외광고판이 실내·외용 미디어로 진화한 것으로 액정표시장치(LCD)와 같은 영상장치에 컴퓨터 기기, 통신기기, 센서 등을 결합해 통해 대중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기기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