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은 2011년 취임과 함께 "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길을 막아 전관예우 논란을 근본적으로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판검사 출신 변호사 수는 해마다 100명을 웃돌고 있다. 급기야 변호사로 전업한 이른바 '전관(前官)' 변호사 수가 현직 판사 수를 크게 앞질렀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현상이 발생한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변호사 배출 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이러한 기현상이 전관예우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7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변호사 등록자 가운데 전관 출신은 판사 1,843명에 검사 1,515명으로 총 3,358명이다. 현직 판사 2,908명보다 450명이나 많다. 전관변호사는 지난 2011년 2,953명으로 판사 수를 넘어섰고 이듬해 3,000명을 돌파했다.
최근 10년간 변호사로 등록해 비교적 활동이 활발한 전관으로 대상을 좁혀도 1,246명에 이른다. 해마다 배출되는 전관변호사 수를 따져봐도 2010년 119명, 2011년 145명, 2012년 113명, 2013년 107명, 2014년 103명 등으로 세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도 10월 말까지 80명의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했다.
반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의 법관은 대부분 정년을 채운 뒤 조정 담당 판사로 근무하거나 대학 강의, 중재, 상담 등 제한된 업무를 처리한다. 윤태석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관들이 변호사 업계에 편입돼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변호사와 당사자 등 장래의 고용주로부터 독립해 재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정년 퇴임한다"고 설명했다.
한상훈 대한변협 대변인도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판검사들이 가급적 정년을 채울 수 있도록 하고 퇴직하더라도 변호사 외의 진로를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직 판검사들은 "법원과 검찰 조직은 오래 일하고 싶어도 일하기 힘든 구조"라고 호소한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인사제도. 우리나라는 지법부장-고법부장-법원장-대법관(판사), 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고검장-검찰총장 등의 승진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각 승진 단계마다 탈락자는 옷을 벗고 나가는 관행이 굳어졌다.
열악한 처우도 판검사의 중도하차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선진국은 사법부의 독립과 우수 경력법관 유치를 위해 법관에게 높은 수준의 처우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관의 연봉은 2억3,871만원, 지법 판사는 1억9,418만원이며 일본 대법관도 1억9,662만원을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 대법관과 검찰총장 연봉은 8,700만원에 그친다. 반면 국내 대형 로펌 변호사의 평균 연봉은 1억8,168만원이다. 현직 판검사가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면 봉급이 2배 이상 뛰는 셈이다.
판검사 수가 부족해 격무에 시달린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지방법원 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 수는 평균 732건. 하루에 2건꼴이다. 검사는 더 열악해 지난해 1인당 2,192건을 처리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승진체계를 깨기 위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따로 판사를 임용해 순환근무 시키는 방안이나 법조 일원화 정착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 등 총체적인 사법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