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학자 박세무의 동몽선습은 '천지지간만물지중(天地之間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하니'라는 글귀로 시작한다. 동몽선습은 천자문을 뗀 아이들이 서당에 들어가 배우는 첫 교재로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익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속한 산업화의 시대를 거치며 외형적 경제 성장은 크게 이뤘지만 기능주의와 효율 지상주의에 밀려 '인간중심'의 삶을 많이 잃어온 듯하다.
자동차로 상징되는 속도문화가 중시되면서 사람이 차보다 뒷전이 돼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경적이 울려대고 위협적으로 다가서는 통에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교통선진국인 유럽과 일본의 경우 자동차와 사람이 뒤섞이는 도심의 모습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할 때 운전자가 서행을 하며 기다려주는 모습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보행자 사망비율도 현저히 높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4년 한 해만 1,910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8%나 차지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8%의 두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로 보행자의 안전할 권리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 교통안전 선진국인 스위스의 경우 일찍이 보행권에 눈을 떠 1975년 국민투표를 통해 보행권을 헌법에서 인정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에서 보행권을 인정할 만큼 그 중요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보행환경 개선과 안전한 보행권 확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도심의 차량 제한속도를 낮추고 보행자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교통 정책을 차량의 소통보다는 보행자의 안전에 비중을 두고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제도는 보행자의 통행과 횡단에 많은 제약을 두고 운전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고 있어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도 시급하다.
그간 우리는 비좁고 복잡한 도로에서 편하고 자유롭게 거닐 자유를 자동차에 뺏긴 채 지내왔고 또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안전하게 걷고 편안하게 머무르고 싶은 매력적인 보행자 우선 국가를 꿈꿀 때가 됐다. 예로부터 사람은 모든 만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