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빚이 지난해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하면서 은행권 대출 잔액이 160조원을 돌파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에다 경기침체에 따른 명예퇴직자 급증, 설상가상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내수소비까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영업 대출의 경우 가계대출과 사실상 경계가 모호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금융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7일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자영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63조2,75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해 동안 22조7,634억원이 늘어 잔액뿐 아니라 증가액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역대 자영업 대출이 가장 많이 늘었던 해인 지난 2007년의 19조8,000억원보다 3조원가량 많다. 또 2013년과 2014년의 연간 증가액이 각각 11조원, 13조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난해에는 한해 동안 앞선 2년치 증가분이 한꺼번에 늘었다.
자영업 대출 증가는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호구지책으로 자영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다 내수불황으로 적정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존 자영업자들이 빚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쏟아져 나온 명퇴자들 역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자영업을 선택하면서 신규 자금 명목으로 자영업 대출을 찾는 상황이다. 여기에 메르스 사태로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융자지원을 늘린 것도 자영업 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로 메르스 사태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7월 한 달간 늘어난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은 3조7,000억원으로 월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밖에 최근 몇 년간 계속되는 저금리 기조에 금융권이 확장적 대출정책에 나섰던 것도 자영업자 대출 증가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1,16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가운데 자영업 대출까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한국 경제의 기형적 리스크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 대출은 가계대출의 '숨은 빚'으로 불린다. 이른바 '소호(SOHO) 대출'로 불리는 자영업 대출은 명목상으로는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가계부채와 구분하기가 어렵다. 대출 신청자들이 대출 실행시 밝히는 명목상 용도는 대부분 사업 자금이지만 실제로는 생활자금과 사업자금 간 구분이 불명확하고 상환 책임도 결국 차주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도 자영업 대출 중 상당 부분을 사실상 생계자금 목적의 대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영업 대출의 증가 속도다. 증가 규모를 보면 2012년 한 해 동안 10조4,705억원, 2013년 11조6,879억원, 2014년 13조5,737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22조7,634억원이 늘어나 지난 4년 동안 58조4,955억원 증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고 자영업의 특성상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며 "금리가 인상되면 이들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겨 사회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