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년이 흘렀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을 파헤친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2007)'가 나온 후 청년 실업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화두가 됐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현실은 극복할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위로의 메시지(김난도·아프니까 청춘이다·2010)가 등장하는가 하면 방전돼버린 듯한 청춘에서 우리 사회의 암울함이 보인다(목수정·야성의 사랑학·2010)는 경고도 나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담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등장했다. 적어도 2012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그 후 변한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곤 절망의 깊이뿐. 3포는 5·7포를 넘어 모든 것을 버린 'N포'가 됐고 10대는 20대의 '잉여'가 됐다. 그 결과 '아프니까…'는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힐링은 청년 세대를 기만하는 기성세대의 사기극으로 낙인찍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나무숲'이라는 공간이 있다. 올해 이 대나무숲을 흔드는 바람은 좌절과 불안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최고 수재들만 모인다는 대학의 분위기는 그렇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한 대학생의 외침이 아프다. 알바를 전전하는 것이 편의점에서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는 게 적어도 그들이 게을러서도, 도전정신과 야망이 없어서도 아니라는 것을 청년들은 이제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대나무숲은 절규하고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다. 노조가 기업의 해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고 봉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그런 곳이 이들의 희망이다. 이런 곳에 취직하려면 대기업, 그것도 정규직으로 들어가야 한다. 낙오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지난해 10월 기준 우리나라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 월평균 임금은 298만원. 300인 이상 기업(470만원)의 63% 수준이다. 그래도 정규직이면 낫다. 비정규직으로 들어간다면 상황은 더 열악해진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임금 인상률은 비정규직이 2.4%로 정규직(3.9%)보다 월등히 낮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를 들먹이며 도전정신을 말하지 말자. 우리나라에서 벤처 또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공한 곳은 네이버·카카오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상당수 벤처는 실패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협력업체나 영세 기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기업의 그늘에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일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벗어나기도 힘들다. 세계 최고의 지원시스템에도 성공한 중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결국 청춘들에게 중소기업에 취직하라는 얘기는 곧 미래를 잃고 살아가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힘들게 직장에 들어가서는 1년 반 만에 때려치우고 나올까.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실패이며 낙오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기업과 정규직에 목을 매는 이유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국가와 기업이 이렇게 만들었고 기성세대는 이를 방조했다.
정부는 청년 실업의 해결책으로 임금피크제를 내놓았다.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일부 대학은 대학을 아예 기업의 인재양성소로 만들겠다고 한다. 중장년이 정규직을 내놓고 대학이 기업형 인간을 만들면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늘어날까. 지금 기업에서는 감원 한파가 불고 비정규직과 시간제는 늘고만 있다.
좌절에서 절망을 넘어 포기를 택한 대나무숲의 청춘들. 이들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서점에 갔더니 미래의 주인인 청년들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적이 놓여 있다. 이 책이 지금 베스트셀러 1위다. 대나무숲의 절규가 '분노'와 맞닿으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를 막을 자신이 있는가.
송영규 논설위원 sk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