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토요 Watch] 코끼리 2배 크기 TV… 다이아몬드 장식… 가격은 따지지도 않는다

슈퍼 프리미엄 가전의 세계

뱅앤올룹슨 등 명품 가전 전문업체 상위 1% 대상 특별제품 한정 판매

시장 17.5조로 전체의 5% 규모지만 "中 공세에 초고가 전략으로 차별화"

LG전자 등 대형 가전업체도 가세


텔레비전(TV)과 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기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힘겨운 가사노동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고 집안 거실을 오락공간으로 바꿔놓은 시기는 1900년대 초다. 초창기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가전기기는 어느덧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품이 됐다. 이에 부유층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가전이 아닌, 특별 제작된 초고가 가전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미엄 가전 시장이 커지자 가전 업체들도 이들 부유층을 겨냥한 초고가 가전 마케팅에 속속 뛰어드는 형국이다.

◇19억원 넘는 TV·1억원짜리 스피커…초호화 가전 속속 등장=1959년 출시된 최초의 국산 라디오인 금성사(현 LG전자) 'A-501'의 당시 가격은 2만환이다. 1966년 금성사가 만든 국내 최초 흑백 TV 'VD-191'의 가격은 6만8,350원이었다. 1959년과 1966년 금성사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각각 6,000환, 1만2,000원 수준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2세대 전만 하더라도 TV와 라디오 등 가전은 그 자체로 초고가 상품이었다. 국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4인 가구 522만원)이면 삼성·LG의 60인치 초고해상도(UHD) TV를 포함한 가전기기 일체를 장만할 수 있는 지금과는 판이한 풍경이다.

이 같은 세상에서 수백억원, 수천만달러가 넘는 재산을 소유한 전세계 자산가들은 대형 매장에 진열된 가전을 쇼핑카트에 쓸어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가전을 주문하거나 한정 생산하는 기기를 사들인다. 뱅앤올룹슨 관계자는 "이들에게 가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며 "한번 마음에 든 브랜드는 수십년 넘게 구입을 계속하는 만큼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세심한 사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상위 소비계층을 위한 가전제품들은 평범한 소시민이 구입할 엄두조차 못할 만큼 값비싸다. 영국의 스크린 제조 기업 타이탄은 네 가지 크기의 TV를 주문 받아 제작한다. 모두 화면이 성인 남성보다 크며 가장 큰 것은 370인치로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두 배 이상 크다. 현재 4대 정도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370인치 TV 가격은 무려 160만달러(약 19억4,160억원) 수준이다. 삼성전자 제품 중 가장 고가인 110인치 TV(약 15만달러)보다 10배 이상 비싼 셈이다.

전세계 부호들 가운데는 시중에 팔지 않는 시제품이나 전시용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LG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 매장에 홍보 효과를 노리고 진열한 9만9,999달러짜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는 정식 출시되지 않는 전시 제품이지만 매장을 둘러본 전세계 갑부들의 판매 문의가 잇따르는 게 한 사례다.

일부 제품은 품질보다는 호화로운 장식이나 입소문을 앞세워 초고가 대접을 받는다. 러시아 부호들을 겨냥해 키맷 인더스트리가 만든 알로스 다이아몬드 TV는 크기가 40인치에 불과하지만 100개가 넘는 20캐럿 다이아몬드를 박았다는 이유로 가격이 13만달러(약 15억원)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최근 스위스 공기청정기 브랜드인 아이큐에어가 성능 검증을 충분히 받지 않은 게 논란이 됐다. 이 회사 제품은 대기업 오너가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큐에어는 한국공기청정협회의 품질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명품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국내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초고가 제품 가운데는 성능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고액에 팔리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초고가 시장 잡아라…글로벌 가전 업계 각축전=가전 업계는 전세계 생활가전 시장의 규모를 250조원 정도로 추산한다. 이 중 TV는 100조원 정도다. 이 가운데 '슈퍼프리미엄' 내지는 '초(超) 프리미엄'으로 소개되는 초고가 제품 시장은 약 17조5,000억원 남짓으로 추정된다. 합쳐서 350조원 정도인 전체 가전 시장의 5%가량의 비중이다.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커지고 있는데다 수익성이 좋아 글로벌 가전 업체들이 초고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밀레·뱅앤올룹슨·보스 같은 기존 전문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시장에 글로벌 대형 가전사들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을 통해 초프리미엄 단독 가전 브랜드인 'LG시그니처'와 빌트인 전문의 '시그니처 키친스위트'를 각각 선보였다. 이와 유사하게 북미 1위 가전 업체인 월풀은 프리미엄 단독가전으로 '키친에이드', 빌트인으로는 '젠에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하이얼에 매각된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역시 '모노그램(빌트인)'과 '프로파일(단독)' 브랜드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과 최상위 소비계층을 공략 중이다.

글로벌 대형 가전사들까지 초고가 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이유는 레드오션이라 불릴 정도로 악화된 가전 분야의 업황 때문이다. 중국산을 필두로 신흥국 저가 제품의 공습이 본격화하자 업체들이 수익성을 지켜낼 분야로 초고가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전세계 주요 가전 메이커로 통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GE·일렉트로룩스·파나소닉의 경우 가전 사업을 시작한 지 최소 수십 년이 넘었다는 점도 초고가 마케팅을 가능케 하는 요소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상위 소비 계층은 50~100년의 역사를 갖춘 기업을 보면서 중국 신생 기업들에서 찾을 수 없는 신뢰감을 느낀다"면서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 밀린 업체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좋은 토대"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가전 업계의 초고가 제품 강화가 소득 양극화의 단면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신흥국을 막론하고 확연히 짙어가는 소득 양극화로 인해 기업들이 소비 여력이 있는 최상위 계층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전세계 가전 기업들이 소비 지출이 불안정해진 중산층 이하 소비자보다는 북미·중동·중국의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에 더 공을 들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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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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