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입이 1억 달러를 웃도는 최고의 시민’,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더불어 미국 청소년이 존경하는 인물.’ 누굴까. 알 카포네(Al Capone)의 단면이다. 본명은 알폰소 가브리엘 카포네.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로 더 잘 알려진 깡패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거쳐 미국 뉴욕에 도착한 이탈리아 이민 가정 출신인 그는 이발사 아버지와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영민한 편이었으나 14살 때 학교에서 쫓겨났다. 여선생의 얼굴을 때려서.
덩치만 큰(179㎝) 껄렁한 10대는 뉴욕 뒷골목을 활개치고 다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20대들이 떠난 자리에 말릴 어른도 없었다. 나이트클럽에서의 싸움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어 평생 달고 다닌 ‘스카페이스(Scarface)’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전쟁이 끝나고 시작된 미국의 ‘풍요로운 20년대’와 ‘금주법 시대’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줬다. ‘전국구’로 첫 출발은 발탁. 시카고의 갱단 두목 조지 토리오가 밀주를 만들고 무허가 술집 주인들을 협박할 돌격부대의 책임자로 카포네를 불러들였다.
마침 미국 경제는 사상 초유의 번영을 구가했으나 1919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금주법으로 욕망을 분출할 배출구가 부족했던 시절. 시카고로 무대를 옮긴 카포네는 밀주와 밀수, 매춘과 도박으로 순식간에 돈을 벌었다. 스물 네 살인 1924년에는 보스인 토리오도 암살 당해(카포네의 소행으로 추정되나 법정에서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 조직의 1인자로 떠올랐다. 기네스 북 1960년 판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1927년 연간 수입 1억 500만 달러(1960년 당시 가치로 14.1억 달러)로 개인으로서는 최고 소득자.’ (밀주 행위로 돈을 번 부자 리스트에는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의 메신저 역할을 해낸 전설적 기업인 아몬드 해머와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도 있다.)
악명도 떨쳤다. 반대파인 아일랜드계 조폭의 조직원 7명을 톰슨 기관총으로 난사한 ‘밸런타인데이의 학살(1929)’을 비롯해 300명 이상을 죽였다. 총잡이 1,000여명을 거느린 깡패 두목이며 밀주 주조와 매매, 불법 도박, 매출, 살인에도 그는 무사했다. 돈을 먹거나 협박에 굴복한 정치와 경찰의 비호 탓이다. 카포네를 조사하던 검사와 뒤를 캐던 기자가 의문의 죽임을 당해도 그는 끄떡 없었다. 법정에 세울 때마다 ‘증거 불충분’으로 빠져나갔다.
법정에서도 당당했다. 취재하려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는 “아메리카니즘이라 부르든 자본주의라 부르든, 우리네 세계의 미국식 체계는 소속원 모두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준다. 이 기회를 두 손으로 잡아서 최대한 활용하면 그걸로 끝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권세는 얼마 안 지나 끝났다. 탈세 때문이다. 경제학 교재로 유명한 ‘맨큐의 경제학’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카포네는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고 말한 벤저민 플랭크린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모양이다.”
탈세로 그를 엮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때 묻지 않은 직원들에게서 나왔다. 미국 국세청(IRS)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강직한 직원들을 뽑아 미 연방수사국(FBI)과 협조해 그를 1931년 잡아들였다. 연방 대법원에서 그는 기소된 23개 죄목 가운데 5개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 8만 달러와 1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카포네는 “내가 모은 돈을 불법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세금을 매긴단 말인가” 하고 항변했으나 소용 없었다.
탈옥이 불가능한 감옥으로 유명해 영화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하는 알카트라즈 섬의 감옥에서 그는 형기 단축을 의식해 모범수로 지냈다. 수감 중에 팬 레터도 적지 않게 왔다. 모범적인 수형 태도를 인정받아 그는 7년 만인 1939년 감옥에서 풀려나며 재기를 노렸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출소 당시 이미 폐인이었던 그는 1947년 1월 25일 초라하게 숨졌다. 사망 원인은 매독과 폐렴에 뇌출혈 합병증. 알 카포네 사후에도 마피아는 한동안 기승을 부렸다. 마약이 밀주를 대신했을 뿐이다.
평생 불법과 살인을 저지른 알 카포네는 자신을 단 한 번이라도 반성했을까. 아닌 것 같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생전의 카포네가 뇌까린 대목이 나온다. “내 생애의 황금기를 바쳐 사람들을 도와주고 서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남은 것은 겨우 온 세상의 비난과 범죄자란 낙인뿐이란 말인가!” 인정받지 못할 뿐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사회복지를 위하는 자선사업가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희대의 범죄자 알 카포네가 꽃 피운 지하경제는 먼 나라의 옛날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0~2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폭 경제도 문제지만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종과 고소득 자영업자 등 가진 자들의 탈세가 만연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하경제는 미국보다도 질이 나쁘다. 알 카포네가 유죄를 받은 직후 미국에서는 전년 대비 두 배가 넘는 체납 세금이 걷혔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국세청의 깨끗한 직원들이 많겠지만 대통령 공약이었던 ‘지하경제 양성화’가 어떤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 더 알 수 없는 게 있다. 자신을 사회를 위한 자선사업가로 여겼다는 알 카포네처럼 사회에 해악을 끼치면서도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자는 없는지, 카포네를 위인으로 존경하고 팬 레터까지 보냈다는 얼빠진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없는지./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