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택

미적거리는 서울시… 갈길 잃은 한남뉴타운

작년8월 원점재검토 결정후 새 가이드라인 감감무소식

1구역은 상가 리모델링 늘어 재개발 반대 목소리 커지고

2·3구역 슬럼화… 사고무방비

가격 하락에 거래문의조차 뚝



#. 이태원 대로변에서 이슬람사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에서 5년 넘게 살았던 김씨(41)는 2년 전 집을 옮겼다. 늦지도 않은 시간에 귀가하던 장모가 골목에서 외국인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욕설과 성추행을 당한 일을 겪고서다. 한남뉴타운 2구역에 해당하는 이곳 길 입구에는 오후7시 이후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이 서 있다. 하지만 성인 남성도 밤에는 혼자 걷기 무서운 우범지역이 된 지 오래다.

# 한남뉴타운 3구역. 이제 1~2개 점포 정도만 영업하는 도깨비시장을 지나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아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않는다. 뒷골목은 어른 2~3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 한 집 걸러 한 집 수준인 공가(빈집)들은 각종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하다. 소방차가 들어올 길도 없어 대형 화재나 응급사고에는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노후주택을 헐어 1만2,000여가구의 새 아파트촌을 짓는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사업이 서울시의 세부 가이드라인 수립 지연이 늦어지면서 갈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 1구역에서는 뉴타운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2·3구역은 늘어나는 빈집으로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등 한남뉴타운 5개 구역이 구역 해제도, 사업 추진도 못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현재 서울시는 '정합성'을 반영해 한남뉴타운의 새로운 개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있다. 당초 지난해 말에서 올 상반기로 늦춰졌고 이 과정에서 사업 속도가 가장 빨랐던 한남3구역마저 모든 사업이 멈춰진 상태다.

◇화재·안전사고 무방비…'슬럼화'까지=2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한남뉴타운 2·3구역의 경우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좁은 골목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역 안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화재나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차가 들어갈 수 없고 낡은 주택들은 벽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어 생활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지역에 거주 중인 한 주민은 "몇 년 전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해 주택이 전소하고 말았다"며 "빈집이 늘어나면서 밤이면 무서워서 밖을 지나다니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일 점심 시간대에 찾아갔음에도 이곳을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한남2구역은 마약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 이태원역 대로변 안쪽 골목에 트랜스젠더 술집 등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2·3구역이 슬럼화돼가고 있다면 한쪽에서는 뉴타운 구역 해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년째 사업이 지연되면서 노후건물을 상가로 리모델링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지역인 1구역. 이곳은 상권 활성화가 잘 돼 있다 보니 재개발 반대 목소리가 크다. 2구역 역시 상가 조합원들 중심으로 재개발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 기약 없는 한남뉴타운… 시세도 하락=한남뉴타운 사업은 이처럼 서울시의 가이드라인 수립이 지연되면서 망가지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8월 한남뉴타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시는 한남뉴타운의 전체 계획을 재검토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내에는 완성을 시키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대략적인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면서도 구체적인 발표 시점을 확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차장훈 도시재생본부 주거사업총괄팀은 "사업성과 높이 제한 양쪽을 맞추면서도 시와 주민, 전문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안을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서울의 노른자 땅을 재개발하는 사업인 만큼 각 분야 전문가들과 공을 들여 최대한 빠르게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개발 가이드라인이 미뤄지면서 뉴타운 꿈도 사라져가고 있다.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래가 완전히 끊겼고 가격도 약보합세다.

인근 M 공인 대표는 "서울시의 사업 재검토 발표 이후 거래 문의조차 끊겼다"며 "5억5,000만~5억7,000만원이던 대지지분 33㎡ 빌라의 가격은 현재 5억2,000만~5억4,000만원선으로 내려앉았다"고 말했다./정순구·이재유기자 soon9@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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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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